반야심경 원문과 해석, 유식사상과 공사상에 대해

2019. 6. 10. 17:02반야심경원문뜻해석

반야심경 원문과 해석,  유식사상과 공사상에 대해

 

(본 블로그는 핸드폰으로, 컴퓨터로, 볼 수 있습니다. 내용이 길기 때문에, 큰 글씨의 “컴퓨터”로, 편하게 읽어 보시길, 권장드립니다. 또한, “네이버” 블로그, “다음” 블로그에, 11개의 블로그 글이, 똑같이 게제되어 있고, 그 제목, 내용도 모두 똑같으므로, 편한 사이트를 선택하세요)

("사후세계 도표", "저승 도표", "삼계의 모습"은, 이글 제일 하단쪽에 있습니다)

 

이 블로그의 글이, 너무 길어 부담스러우면, 아래 블로그 리스트 중, (②번 요약 발췌분) "반야심경, 유식사상과 공사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반야심경의 원래 이름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말뜻을 풀이 하자면~

마하=높고 대단한/ 반야=지혜/ 바라밀= 완성/ 심경=마음을 닦는 경전이므로, 반야심경은 마음을 닦는 높고 대단한 지혜의 경전이라는 뜻입니다.

 

반야심경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과 의미 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을 이해한다면, 반야심경을 거의 이해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글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원문과 해석을 위해서는, 불교의 유식사상, 공사상, 연기사상 등의 여러가지 기초적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일출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般若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반야심경 ) 

 

觀自在菩薩  行深  般若波羅密多 時  照見 五蘊 皆空 度  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 개공도 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모두 공(=비유비무)한 것을 비추어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너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 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야,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그러하니라.)

 

舍利子, 是 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야,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 受想行識  無 眼耳鼻舌身意  無 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그러므로 공(=비유비무)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임과 법도 없으며)

 

無 眼界  乃至  無 意識界  無 無明  亦 無無明 盡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乃至 無 老死  亦 無 老死 盡  無 苦集滅道  無智  亦 無得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以無所得 故  菩提薩 依  般若波羅密多  故

이무소득고 보리샬타 의반야바라밀다 고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心 無가碍  無가碍 故  無 有恐怖  遠離 顚倒夢想  究竟涅槃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三世諸佛 依  般若波羅密多  故得  阿多羅三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 아뇩다라삼막삼보리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故知  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能 除一切苦  眞實 不虛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아라)

 

故說  般若波羅密多 呪  卽說 呪曰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노니 주문은 곧 이러하니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밑줄 부분3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밑줄 부분3번)

 

반야심경에서 "바라밀"이란 피안에 도달한 "완성"을 뜻하는 것으로, 바라밀에는 ①"보시",②"지계",③"인욕",④"정진",⑤"선정",⑥"반야"의 6가지 바라밀이 있으며, 이 육바라밀은 해탈에 필요한 과정으로, ①보시 바라밀은 보시의 완성을 뜻하며, ⑤선정 바라밀은 선정의 완성을 뜻하며, 이러한 바라밀(완성)은 ⑥"반야(지혜)"에서 최종 완성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⑥"반야"(지혜) 바라밀은 "지혜의 완성"이라는 뜻입니다.

 

지혜(반야)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비유비무"(공)의 모습인데, 인연 연기로 인해 존재하는 것으로(인연연기의 집합체, 번뇌의 집합체, 유위의 집합체), 모든 인연 연기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 (자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모습) 그대로가, 바로 세상 존재의 진리임을 아는, 궁극적인 혜안을 말합니다. 반야심경은, 600여권에 달하는 대반야경의 핵심적 내용을 260로 축약한 것입니다(제목을 포함하면 270) 본문242자+주문18자+제목10자=270자

 

"반야심경"은 600여권에 이르는 대반야경(금강반야경, 즉 금강경도 대반야경의 범주에 포함됨. "금강경"이란, 모든 것을 깰수 있고, 어떤 것으로 부터도 부서지지 않는 최고로 강한 경전을, 의미하는 말이다.)의 깨달음에 이르는 핵심적 지혜인 반야를 "260자" 로(제목 포함 270자), 축약하여 설하고 있으므로, 법당의 중앙 상단에 있는 깨달음을 완성한 "부처님"을 향해서는 이 경을 읽지 않으며, 중,하단의 중생[즉, 법당의 좌우 중단에 있는 "신"들(이들을 신중 또는 화엄신이라 함)과 법당의 하단 있는 죽은 자인 "망자"] 그리고 "일반 대중"을 향해서 이 경을 읽게 됩니다[신중(호법신중)과 신장(호법신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맨 아래 "블로그" 리스트 중, "불교사찰과 불교기도문~"블로그 내용 참조].

 

10대제자 ~사리자(지혜 제일), 목독련(신통 제일), 마하가섭(가섭, 두타 제일, 석가사후에 제1차결집 실행), 아나율(천안 제일), 수부티(해공 제일), 부루나(설법 제일), 가선연(논의 제일),우파리(지율 제일), 나후라(라휼라, 밀행 제일. 석가아들),아난타(아난, 다문 제일)를 10대 제자라 함.

 

원효스님의 일심과 화쟁 ~차별없는 일심에 근거를 두고, 긍정과 부정의 넓은 이해를 근거한 화쟁이론으로 화합과 조화를 말씀하신 것.

"진리의 참모습인 대승은 깊고도 고요하고, 맑고도 평화로운 것,깊고도 또 깊으니 어찌 그 모양을 말할 것이며, 고요하고 고요한 그것은 오안으로 볼수없고, 사변으로 능히 말할수 없다. 크다할까 어느구석에도 들어가지 못하지 않게 작다고 하지만, 어떤 큰것이라도 감싸지 못함이 없다. 있다할까, 없다고 할까, 한결같이 텅비어 있고 없다고 할까, 만물이 다 이것으로 부터 나온다. 무어라 이름을 붙일수 없으므로, 감히 이것을 대승이라 할것이다.

 

도는 모든 존재에 미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통합해서 논하면 일관이요 전개해서 설하면 십문이다, 전개해도 하나가 늘어나지 않고, 통합한다고 열이 줄어 들지 않는다"라며 모든 논쟁들이 일심으로 통합될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일심(마음,반야,지혜,불성)에 근거한, 화합과 조화가 화쟁이라는 것입니다.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에서, 마음법에는 두가지 문이 있다고 하는데~ ① 심진여문(진여문)~우주일체법의 본성으로, 여여하게 존재하는, 법성을 의미하는 문 심생멸문(생멸문)~우주일체법의 본성인 법성에 의지하여, 생멸하는 문, 즉, 번뇌에 의해 생멸하는 아뢰아식

 

* “깨달음”이란? ~ 삶에는 “인연과보의 법칙”이 따르는, “생멸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본래문”인, “비유비무”(중도)로 존재하는, “진여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몸소 비추어 보는 것(조견)을 "깨달음"이라 말한다. 부처님은, 세계 최초로 “진여문”을 깨우치고, “오온”을 비추어 보신 후, "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며,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곧 “중도”(비유비무 / 방법은, 존재의 본질인, 비유비무를 비추어보기 위한, 8정도)이며, 중도의 내용이 “연기”이며, 이 “중도”(비유비무)와 “인연 연기”(사성제)를 깨치면,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상스님의 법성게 의상조사 법성게 ~"법성은 원융하여 두 모양이 없으며, 제법은 부동하여 본래로 고요하네, 이름없고 형상없어 일체가 끊어 지니, 깨달아야 아는이치, 다른 경계아니로다. 참성품은 매우 깊어 지극히 미묘하니, 자성을 떠나 인연따라 이루로다. 하나속에 일체며 많은 중에 하나이니, 하나가 일체고 많은 것이 하나로다. 한 먼지속에 시방세계가 있고, 일체 먼지 속에도 또한 이와같도다. 한량없는 먼 겁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곧 한량없는 겁이로다. 구세와 십세가 서로 연결되니, 잡란하지 아니하고, 따로 따로 이뤄지네.

 

처음 발심한 때가 깨달은 때며, 생사와 열반이 서로서로 같도다. 이와 사가 깊고깊어 분별 없으니, 열 부처와 보현같은 대인의 경계로다.

능인의 해인삼매 그 가운데서, 마음대로 부사의를 내도다. 허공가득 보배내려 중생을 이익주니, 중생은 그릇따라 이익얻도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진리로 돌아가니, 망상을 안쉴래야 안쉴수가 없네. 훌륭한 선교방편으로 뜻대로 잡아내니, 집으로 가는 길에 분수따라 양식얻네. 다라니라는 무궁무진한 보배로서 법계를 장엄하고, 보배궁전 가득채워, 궁극에는 실제라는 중도상에 앉게되니, 예부터 그대로 그 이름 부처로다. → 입을 열면 어긋나지만, 어쩔수없이 또 업을 하나 쌓았도다-"

 

“법성게”, “약찬게” ~ “법성게”는, 의상조사가, 화엄사상을, 짧게, 정리하여, 게송하기 쉽게 정리한 것을 말하며, 주로 “영가단”을 향해 읽게 됩니다. “약찬게”에는 “화엄경약찬게”와 “법화경약찬게”가 있는데, “약찬게”라는 말은, 경전이 너무 길어서, 게송하기 어려우므로, 각 머리부분을 간략하게 줄여서, 게송하기 쉽게 만든 것을 말합니다. 약찬게는 주로, 법당 중단에 있는, “신”들인,  “신중단”을 향해 게송하게 됩니다.

 

자연의 법칙이 심판자입니다 ~하늘의 복은 누구, 누구를 가려서 복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만인 평등으로 모두에게 복을 주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하늘(조상, 보살등)은 만인 모두에게 차등없이 복을 주는데, 만인의 모두에게 주는 복을 마음의 업으로 인하여 스스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 인과의 법칙입니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누구를 가려서 비추는 것이 아니듯이, 하늘은 만인 모두에게 복을 주려 모두에게 태양빛을 비추어주고 있는데, 마음이 업으로 그늘이 만들어져서 또는 스스로 그늘로 들어 감으로서, 복을 스스로 받지 못하게 업을 짓고 나쁜 행동할 뿐입니다.

 

마음에 새겨진 선업도 마음의 업이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자연적 법칙으로 이에 상응하는 보상의 복덕이, 악업을 행하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마음의 자연적 법칙으로 이에 상응하는 고통이 주어지므로서, 마음의 업이 해소되는, 자연의 법칙으로 인과의 법칙입니다. 어떤 나쁜일을 행하였을 때, 현실 세계에서도 형벌이 주어지지만, 이것으로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업은 해소되지 못하고, 이승이든 저승이든 이러한 업의 해소를 위해 윤회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즉, 자연의 법칙이 심판자입니다)

 

인과응보~ 누구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되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선천적 “평등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난 이후, 자신의 잘못에 따라, 불평등이 존재한다면, 누구를 탓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잘못 없이, 사람은 출생부터, 선천적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유한 집안에,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안에, 어떤 사람은 신체적 불구로, 어떤 사람은, 수명이 짧기도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생기는, 선천적 “불평등은, 자신의 전생의 업보”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 생기는 선천적 "불평등과 운명”은, 윤회에 의한, 장기적, “인과응보”의 결과라 생각될 뿐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운명~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자신의 “전생업”에 따라, 사람마다, “불평등하게, 차후 환생을 한다”고 합니다. (살았을 때의 기록은, “행위”마다, 마음 깊숙히 있는, 아뢰아식에 기록되고, 죽게 되면, 육신은 없고, 마음뿐이므로, 마음만 가지고, 저승에서 살다가, 육신을 받아 환생하므로), “이승”에서는, 마음에 기록된 “업”에 따라, 중간에 선업이 있다면, 복덕로, 악업이 있었다면, 고통을 받게 되므로서, “전생의 업”을,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이승에서 죄를 지으면, 자신의 무의식(제8식, 아뢰아식)에 새겨져, 자신의 죄를 절대로 숨길 수 없는 죄업이 되고, 공덕은 선업이 됩니다. 이것이 이승에서, 전생과보가 됩니다. 그래서, “전생업”이 “현생의 운명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통계적으로 파악한 것을, 사주팔자, “사주 명리학”이라 합니다).

 

전생기억은, (죽게 되면, 육신은 없고, 마음뿐이므로, 마음만 가지고, 저승에서 살다가, 육신을 받아 환생하므로), 대부분, 마음에 기록된,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모든 전생을 기억하게 된다면, 오히려 괴로움만 더할 뿐입니다). 이와 같이, 이승에서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행복은, “전생과보”에 의한 것이므로, 소위, 전생에 “나라를 구한 공덕인가?”라며, 느닷없는, 큰 행운을, 빗대어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숙명론과 불교~ 대대로 누적된, 자신의 "전생 업보"때문에, 불평등하게 태어 났지만, 그것을 현재의 공덕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이고, 변화시킬수 없다는 것이 "힌두교"입니다. 불교는 현재에 짓는 "공덕과 업보"는 "내생의 거울"이 되므로, “죄업을 짓지 마라”는 것이, 주된 가르침입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출생부터, 인간 불평등을 만들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창조주라면, 그 존재를부정해야 하지요?)

 

윤회 ~ 오온을 통한 생각과 느낌은 나의 본체가 아니고, 그 생각과 느낌을 감지하는 그것, 그 자체가 나의 본체이다. 나의 오온이 소멸해도(육신의 소멸, 죽음), 나의 본체는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저승이다. 혹시, 나의 본체가 미망으로, 이승에 미련과 집착과 원한등을 가지며, 이승에 간섭하려 하고, 이승에 머룰려고 집착하는 영혼이, 집착령, 원혼령등의 귀신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여, 목숨을 끊게 되면, 그 속마음은 이승에 대한 원한이 깊어, 그렇게 한것이므로, 이승에 원한이 있는 일종의 원한령이다). 이들이 천도재의 대상입니다.

 

이들중 산사람의 몸에 들어와,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 방언도 하는 것을 빙의라 말하는데, 이러한 빙의한 귀신은 강한 집착력을 보이므로, 천도보다는 원력있는 스님,법사,무속인에 의한 퇴치의 대상일 뿐입니다. 한편, 이승에 대한 원한과 집착을 버리고, 다음생을 기다리며 살게 되는 곳을 저승이라 하며, 이런 저승의 삶에서 업의 소멸을 위하여, 인연법으로 다시 이승에 오게 되는 자연현상을 윤회라 말함.

 

[인연법으로, 마음뿐인 저승에서, 육신을 받아 이승으로 올 때, 마음에 새겨진, 모든 기억은, 마음의 제일 깊숙한 곳 즉, 무의식(제8식 "아뢰아식")에 저장됨과 동시에, 모든 기억은 잊어버리게 되며, 새로 받은 육신에 의해, 과거의 업을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승의 삶입니다(역학에서는 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사주"라 하고 있음)] → 사후세계의 도표, 저승의 모습은, 이 블로그 후반부 참조.

유식사상 (유식론, 중생심, 마음의 근원) ~인간은 "안,이,비,설,신,의"(눈,귀,코,혀,몸,의식)이라는 6가지 감각기관이 있는데, 6번째의 "의식"을 흔히 마음이라 부름니다. 이 제6 "의식"을, 불교에서는 다시 세분하여, 제7식을 "마나스식", 제8식을 "아뢰야식"이라 말 합니다. 현대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제6식을 "의식"의 세계라 하고, 제7식과 제8식을 "무의식"의 세계라 분류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제8식인 "아뢰야식"을, 마음의 가장 근원적인 무의식의 종자 라 말합니다. 이것이 유식사상 입니다. (마음의 근원~ 유식사상).

 

​원효스님은 그의 철학적 유식론인 "대승기신론소"에서, 제8"아뢰야식"은 모든 선악을 분별없이 포용하고 있고, 제7"마나스식"은 "나"라는 집착에 의한 교만의 마음이며, 제6 "의식"은 탐진치라는 탐욕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선악을 분별없이 포용하고 있는, 이 아뢰야식이 우리마음의 가장 근원적인 무의식의 종자이며 업의 종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6식인 탐욕의 마음으로 전개된 것이, 삼라만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식론에 의한 불각의 마음을 깨뜨려 나가면, 깨달음의 시각이 전개된다고 합니다. 즉, 탐진치(제6 "의식")라는 탐욕의 마음을 없애고 →"나"라는 집착과 교만(제7 "마나스식")의 마음을 없애면 →무의식의 종자이며, 업의 종자(제8 "아뢰야식")도 서서히 소멸되어, 깨달음의 시각이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 아뢰야식은, 자신의 모든 행위를 선과 악을 분별없이 포용하고 접수하여, 선업이나 악업이 되므로, 우리마음의 가장 근원적인 무의식의 종자이며, 업의 종자라는 것입니다(이승에서 죄를 지으면, 자신의 무의식(제8식, 아뢰아식)에 새겨져, 자신의 죄를 절대로 숨길 수 없고, 이것이 업보가 된다. 자신의 행위는 자동적으로(무의식적으로) 마음에 새겨진다는 자연적 원리를 이용하여 수사하는 기법이, 외국에서도 많이 이용하는 과학적 수사기법인, 바로 “최면수사입니다.

 

즉, “최면수사”란, 최면에 들게 하여, 자신의 내면에, 무의식 상태로 새겨진, 불교에서 말하는, 제8식 “아뢰아식”을, 마음 깊숙이 들여다 보게 하므로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최면을 통한 수사를 말합니다(최면을 통하여, 연령 역행의 방법으로, 전생을 알아 보기도 하는데, 여러 전생의 무의식이 뒤섞여, 정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최면을 통하여, “아뢰야식”에 저장된 전생 기억을 정정하거나, 지우는 방법으로, 원인 치료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즉, 아무런 이유가 없이, 공포심과 두려움이 있다면, "아뢰아식"에서, 공포심의 전생 원인을 정정하여, 치료에 응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아뢰아”식에 의한, 전생 윤회에 관하여는, 서양 심리학자인 에드가 케이시의 "전생 리딩 카르마 사례들"이 유명하며 이에 관하여는 인터넷 또는 책자참조)

 

윤회의 증거~ 자연적 원리인, 근원적인 무의식의 종자인 아뢰아식은, 누가 가르쳐 준적이 없음에도, 동물들이 태어나면서 젖을 찾는 행위나, 좋으면 꼬리를 흔드는 행위도, 대대로 훈습된, 무의식인 아뢰아식 작용이 아닐까요? 만약, 생명이 DNA유전자로 프로그램된, 단순한 물질만의 모음이라면, 그 물질에 무의식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모든 생명에는 대대로 훈습된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것이 윤회의 증거 아닐까요? 즉, "진화론"은 자연의 법칙인, "윤회"를 바탕으로 성립됩니다(만약,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라면, 무엇으로 생명체 후손 진화가 이루어지나요? 과학자들은 “​우연히” 유전자 DNA변이가, 발생하여, 적자생존 원리에 의해, 진화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천, 수만번의 “윤회”를 거듭하며, 아뢰아식에 새겨진, 적자생존 “욕망”이, 유전자 DNA변이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우연히”보다 합리적 아닐까?)

 

우주와 별 ~ 우주에는 약 수천억개 이상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마다 약 수천억개 이상의 별이 있다고 합니다. 지구가 속하는 은하의 수천억개의 별중의 하나가 태양이며 그 태양의 혹성이 바로 지구입니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센타우리 프록시 라는 별로, 빛의 속도로 4.24년(4.24광년)이 걸리곳에 있으며, 눈으로 보이는 센타우리 알파A와B 라는 별은 빛의 속도로 4.37년(4.37광년)이 걸리는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윤회는, 이러한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의 항하사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 삼천 대천세계의 자연현상입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 삶들은, 갈애(욕망)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불행의 경)

 

* 우리 우주나이 138억년 (우주에는, “안드로메다 은하” 같은, 약 수천억개 이상의 “은하”가 존재하고, 각각의 “은하”에는, 약 수천억개 이상의 “별”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 은하”의 약 수천억개 이상의 별 중, 하나가 태양이고, 지구는 태양의 혹성일 뿐입니다.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빛의 속도로 3만년정도 걸리는 3만광년 거리에 있다. “우리 은하”의 크기는 약10만광년이며,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로 부터, 약220만 광년의 거리에 있습니다. 접시형 은하는 비교적 신생 은하이고, 구형 은하는 비교적 오래된 은하라 합니다.거리는, "1a형 초신성 밝기"를 기준으로, 그 "은하"에 존재하는 "변광성"별의 색상 변화에 근거하여 측정하게 됩니다. 현재, 우주 탐사선의 목표는, 태양계를 벗어나, 0.01광년의 거리에서, 다른 행성과 비교를 위해, 태양과 “생명체”가 있는, “지구행성”모습을 찰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 태양탄생 50억년전→지구탄생 45억년전

 

* 우리은하~ “우리 은하”의 모습은, 납작한 나선형 팔을 가진, 접시형 모습의 “나선 은하”이다. 우리가, “우리은하” 속에 있으면서, 지구에서 보는, “은하수”가, 바로, “우리은하”의 단면 모습이다. "우리은하"의 중심부에는 초 거대질량을 가진, 블랙홀 "궁수자리A"가 있다. “우리은하”의 단면(은하수)에 대하여, 수소원자 분포도를 측정하거나, 단면(은하수)에 보이는, 별들을 적외선으로 찍어, 그 색상 분포도를 통하여, “우리은하”의 모습을 파악하게 되었다(“우리은하”에서, 생명체 존재가능성이 가장 높은 별(항성)은, 1997년 발견된, 태양과 비슷하게, 7개의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 “물병자리”방향으로 40광년정도 떨어진, 적색 왜성, “트리피스-1” 항성이다).

 

* 태양계밖 “우리은하”에서, 지구와 비슷한 행성~

① 제임스피블스(미국), 미셀마요르(스위스), 디디에켈로(영국)등 3명은, 우주속 수많은 은하의 분포와 양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이론적 도구를 만들어, 우주진화와 구조에 대한, 해명에 기여하였다. 또한, 태양계밖에 있는 태양과 비슷한, “페가수스51”별(“헬베티우스” 별)에 있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발견한 공로로, 201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② “헬베티우스”라는 별은, “페가수스” 별자리 방향으로, 빛의 속도로 50.45년이 걸리는 거리(50.45광년)에 있는, G형, “준거성”으로, 이 별이, (자체 빛을 내지않는)“행성”을, 거느리고 있음을 1995년 최초로 발견하였다. 이를 도화선으로,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수많은 외계행성 발견”에 기여 하게 되었음. 즉, 지구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 행성은 발견하기 어려운데, 항성(별)과 행성은 각각의 중력을 가지고 있고, 항성(별)이 큰 궤도를 돌때, 작은 궤도를 가진 행성과의 상호간 중력 작용인, “도플러효과(중력의 영향으로, 빛의 색이 변함)를 이용하여 행성의 존재를 파악하게 된다.

 

③ 1997년 발견한, ‘물병자리”방향으로 40광년 떨어진, “트리피스-1”항성을, “도플러 효과”와 “통과측정법”(행성이 항성을 돌 때, 빛의 밝기가 변하는 것)으로, 측정하여, 이 별이 태양과 비슷하게, 7개의 행성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7개의 “행성”중에서 4번째, 5번째 “행성”에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이 행성들은 자전을 하지 않아, “행성”의, “항성”쪽 방향으로는 극심한 고온, 반대쪽은 극심한 저온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다).

 

삼천대천세계 ~ 한 부처님이 계시는 세계를 1세계라 말하는 데, 이런 1세계가 1천개가 모인 것을 소천세계 라 말한다. 이런 소천세계가 1천개 모인것을 중천세계 라 말하고, 중천세계가 1천개 모인것을 대천세계 라 말한다. 즉, 대천 세계는 10억개의 부처님세계이다. 이런 10억개의 부처님세계인 대천세계가 3천개가 있으니, 3조개의 우주세계를 이르는 말이 된다. 이것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셀수도 없이 많은, 무한한 우주세계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그 무한한 우주세계가 모두 불국토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사바세계 ~ 불경에서, 우주에는 수도없이 많은 불국토가 있다고 말합니다. 즉, 지구에만 인간과같은 고등 생명체가 살고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동승신주 남쪽에 남섬부주 서쪽에 서우화주 북쪽에 북구로주 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지구전체가 속하는 세계를 남섬부주 염부제 사바세계 등으로 부름니다.

 

수미산~광대한 우주를 표현하는 불교적 우주관에 기인한, 특정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을 말한다. 즉, 수미산은 특정 우주에 있어서의 그 중심을 의미하는 상상의 산이다. (불교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부처님의 “교화와 설법의 대상”인, 중생으로 본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저승세계의 영혼, 갈길을 몰라 구천을 떠도는 미혹한 영혼, 자신을 버리지 못하여, 열반에 알지 못하는 “신”등,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중생으로 보며, 이들을 모두 부처님의 설법과 교화의 대상으로 본다)

 

영의 세계에 있어서의 시간과 공간 ~ ① 일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이 존재하므로서 중력이 발생하고, 그 중력이 질량주위의 시간과 공간의 경로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미시적 세계인 “원자이하의 세계”에서도 중력이 존재하기에, “양자역학”이라 합니다. ② 영의 세계가, “비유비무”의, “미시적 세계라면, 그곳의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사는 "거시세계"인, “사바세계”의 시간과 공간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저승의 세계”나, 부처님 계시는 “적멸의 세계에 있어서의 그 시간과 공간은, 사바세계와 비교하기 힘든 시간과 공간일 것입니다.

 

아승지겁~ “아승지”는 헤아릴수 없는 정도로, 많다는 뜻. “”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무한한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승지겁”이라는 말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무한한, “겁”의 시간이, 헤아릴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의 시간을 말한다.

 

”의 시간~ “1겁”은 “잡아함경”에서 ① 가로, 세로, 높이 15Km정도의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채우고, 100년마다 1알씩 꺼내어, 그 성안의 “겨자씨가 전부없어지는” 정도의 시간을, 넘는 정도의 시간 ② 가로, 세로, 높이 15Km정도의 “큰 바위”를, 누군가 100년마다 한번씩 스쳐지나가며, 마모될때, 그 “바위가 모두 마멸되어 없어지는” 정도의 시간”을, 넘는 정도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겁”을, “1소겁”이라 하고, “소겁” 20개가 모인 것을, “1중겁”이라 합니다. “1중겁”이 4개가 모여, “1대겁”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1대급”은, “4중겁”이며, “80소겁”이 됩니다. “1대겁”은, 하나의 우주가, 생기고, 마모되며, 소멸되는, “성”, “주”, “괴”, “공”이라는, 성립되고(성), 머물고(주), 무너지고(괴), 비어지는(공), 과정인 4개 과정["성"(20소겁),"주"(20소겁),"괴"(20소겁),"공"(20소겁)]을 거치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의 별(또는 하나의 은하)이, 성립되고(성), 머무르며(주), 무너지고(괴), 비워지는(공) 과정에서, 소요되는, 상상조차 힘든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 불교의 “대겁” 개념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저급하여, 오직 동물적 생각뿐인, 식욕, 음욕, 수면욕만을 가지면서, 자신의 동물적 생각을 고치지 않으면, 차후, 동물로 환생할수 있습니다. 일반적 사람은, 식욕, 음욕, 수면욕 외에~~~재물욕과 명예욕을 가지므로, 대부분 인간으로 환생합니다.

 

* 진화론과 윤회론~ ① (인과) → (발생) 영혼, 육신 (수천, 수만번의 윤회 순환으로) 영혼은 점차 성숙(윤회론), 육신은 점차 진화(진화론) (윤회 순환) ② 영혼이 성숙하여, 인과를 짓지 않으면(즉,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면), 인과소멸 → 인과가 소멸하면, 영혼은, 육신으로 인한, 생사윤회의 고통이 없는, “진여”에 도달(성불)

 

탐욕과 집착 ~ 정당하게, 스스로 노력하여 이루어지는 재물이 자기의 것이지, 정당하지 않고, 자기 것이 되지 않는 재물에 대하여 욕심을 부리는 것을 탐욕이라 합니다. 또, 만남도 인연으로 생겼고, 헤어짐도 인연이 다했기에 헤어진 것입니다. 죽음도 이 세상과의 인연이 다했기에, 저승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연이 다한 것에 집착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무소유~ 마음의 무소유를 의미한다. 부처님 말씀에, “고정된 실체가 없는 ‘나의 소유’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소유’임을 관찰하도록 하여라”(사념처 중 '법념처'를 관할 때). 즉, ‘자아’의 실체는 있지만, ‘고정된 것’이 아니다(무아). ‘자아’의 실체가 고정된 것이 아닌 데, ‘나의 소유’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므로, ‘모든 나의 소유’는, ‘무소유’임을 관찰하여라’는 부처님 말씀입니다('나의 소유'라 말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나의 소유'가 아닌, '무소유'이다). * 색즉시공 = 비유비무 = 공 = 제행무상 = 양자역학 → 모든 존재는, 영속적 실체가 없으며, [① (불교) 인과, 연기~ ② (양자역학) 관찰자~]와의, “상호작용”하는 “관계만 있을 뿐이다(양자역학에 의한,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논리)

 

탐진치~탐욕(), 성냄(),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말하는데, 탐진치는 지혜를 어둡게 하고, 악의 근원이 되므로 "삼독"이라 함. (탐진치 삼독 줄이기)~() 당장 눈앞의 갖고 싶은 재물에 얽매이는, 욕심을 부리지 말며 () 나만 옳다는 생각으로,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하여, 화내지 말고 (치)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낮추고, 항상 옳은 판단을 위해, 선지식을 배우려 노력한다.

 

오계 ~불자의 생활규범으로, 이유없는 살생을 하지 마라(불살생), 주지 않는 것을 가지려 하지 마라(불투도), 음행하지 마라(불간음), 거짓말을 하지 마라(불망어), 정신을 흐리게 하는 술을 절제하라(불음주)의 5가지를 오계라 한다. 불법승(부처님, 불법, 스님)에 귀의 하기로 결심하고, 불교에 입문한, 재가 신도는 오계(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를 받게 됩니다. 사미(예비 남자승려)와 사미니(예비 여자승려)는 10계, 비구(남자승려)는 250계, 비구니(여자승려)는 348계를 받게 됩니다.

 

* 부처님은, 열반하시기전, 마지막 설법지 "베살라"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비구들아,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계율”을 존중하되,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듯이, 가난한 사람이 보물을 얻은 듯이, “계율”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계율”은 너희들의 큰 스승이며, 내가 세상에 더 살아있다 해도 이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계”는 해탈의 근본이니라. 이 “계”를 의지하면, 모든 “선정”이 “계”로부터 나오고, 괴로움을 없애는 “지혜”가 나온다. 그러므로 너희는 “청정한 계를 범하지 말라. 청정한 계를 가지면 좋은 법을 얻을 수 있지만, 청정한 계를 지키지 못하면 온갖 좋은 공덕이 생길 수 없다”. “계”는 가장 안온한 “공덕”이 머무는 곳임을 알아라."

 

십선업과 십악~인과법에 의해, 나쁜 과보를 물리치고, 자신을 좋은 과보(선업)으로 이끌어 주는 10가지 행동 준칙을 10선업이라 말한다. 십선업은, 신(몸), 구(입), 의(생각)의 "삼행처"로 부터 비롯되는, 10가지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을 십선업이라 말한다.

 

1. 몸(신)으로 짓는 3가지 악업  → 몸으로 짓는 3가지 선업

① 살생 ---------------------------- ① 불살생 (이유없는 살생을 하지 않는다)

② 투도(도둑질)------------------- ② 불투도 (주지 않는 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③ 사음(음행)--------------------- ③ 불사음 (부정한 음행을 하지 않는다 / 남의 부녀자를 탐하지 않는다 )

 

2. 입(구)으로 짓는 4가지 악업 → 입으로 짓는 4가지 선업

④ 망어(거짓말)------------------ ④ 불망어 (언제 어디서나, 정직하고 바른 말을 한다)

⑤ 양어(이간질)------------------ ⑤ 불양어 (이간질을 하지 않는다)

⑥ 악구(험담)-------------------- ⑥ 불악구 (남을 괴롭히는 험담이나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⑦ 기어(꾸밈말)------------------ ⑦ 불기어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밈말로 남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3. 생각(의)으로 짓는 3가지 악업 → 생각으로 짓는 3가지 선업

⑧ 탐애(욕심)--------------------- ⑧ 불탐애 (허황된 탐욕을 버리고, 분수에 맞지 않는 것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⑨ 진애(성냄)--------------------- ⑨ 불진애 (성내지 않고, 상대방을 언제나 자비롭게 대하고, 자비심을 가진다)

⑩ 치암(어리석음)----------------⑩ 불치암(그릇되고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언제나 지혜로서 슬기롭게 대한다)

 

* 십악참회 (천수경의 십악 참회 기도문)

① 살생중죄금일참회, 투도중죄금일참회,

② 사음중죄금일참회, 망어중죄금일참회,

③ 기어중죄금일참회, 양어중죄금일참회,

④ 악구중죄금일참회, 탐애중죄금일참회,

⑤ 진애중죄금일참회, 치암중죄금일참회,

⑥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죄도, 부처님을 의지하며, 일념으로 마음을 닦으면, 모두 없앨 수 있으니,

⑦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 (마음을 닦으면)마른 풀이, 눈 깜박할 사이에 불에 타서 없어지듯, 모두 멸하여, 조금의 남김도 없어 진다.

⑧ 죄무자성종심기 : 죄는 자성이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죄는 무자성이니, 마음 따라 일어난다)

⑨ 심약멸시죄역망 : 마음이 소멸하면, 죄도 역시 없어진다(마음의 “공”함을 비추면, 죄도 "공"하여 없어진다)

⑩ 죄망심멸양구공 : 죄도 없어지고 마음도 소멸하여, 두 가지가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아라,

⑪ 시즉명위진참회 : 이것을 일러 진실한 참회라고 말한다.

참회 ~부처님, 보살님앞에,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 즉, 부처님, 보살님전에 과거 자신의 탐욕,성냄, 어리석음(탐진치)으로 인한 잘못을,절을 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음을 다짐하는 것을 "사참"이라 한다. 사참을 한후, 죄의 본질은, 인과없이 스스로 홀로 존재하지 않아, “자성”이 없고, 마음따라 죄의식이 생기므로, 부처님을 의지하며, 일념으로 마음을 닦아, "공"함을 비추어 보아, 자신의 죄의식을 소멸시키는, “이참”을 해야 한다. 이것을, 진정한 “’참회”라 말한다(즉, 진실한 사참을 한후, 참선으로 이참을 하는 것을 참회라 말합니다)*108참회경을 읽으며, 1개읽고 한번절하고, 그 다음 1개읽고 절하면서, 108개를 모두하게 되면, 108참회가 된다).

 

무재칠시 ~ 재산이 없어도, 돈 들지 않고, 남에게 베풀수 있는 7가지 선업을 쌓는 방법을 말한다.

① 몸으로~무의탁 노인 돌보기, 남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행위

② 마음으로 ~사람을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기

③ 눈으로~마음을 안정시켜 일희 일비하지 않고, 좋은 마음가짐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④ 말로서~남에게 늘 칭찬과 격려의 말하기를 실천한다.

⑤ 행동으로~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선의의 경쟁을 하되, 상대에게 우선권을 양보한다.

⑥ 얼굴로~항상 따뜻한 얼굴로 남을 대하기

⑦ 상대에게~상대의 겉모습에 좌우되지말고, 그 사람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 준다

 

자신에게 제일 소중한 것 ~살면서 자신이 제일 소중하게 여겼던, 재산은 죽음과 동시에 미련없이 자신을 떠나고,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가족도 무덤까지만 자신과 동행을 해주며, 육신 몸뚱아리 조차도 백골이 진토될때 결국은 자신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업식(선업+악업)자신이 지옥을 가든, 어디를 가더라도 늘 함께 하며, 다음 생애까지도 함께 하면서 운명 행로를 결정짓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가장 먼저 버리는 재산이 제일 소중할까? 아니면, 자신을 영원히 따라 다니며, 이승과 내생의 운명을 결정짓는 업식(아뢰아식)이 더 소중할까?

 

자등명 법등명 ~스스로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자등명), 부처님이 설하신 법의 등불을 밝혀서(법등명), 고해의 바다인 사바세계를 살아 가라는 가르침. 즉, 모든 중생은 본질적인 면에서 부처의 본성인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스스로의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우주의 본질인 반야(지혜)의 법에 의지하며 살아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승에서 껍데기인 육신의 감각에 의지하여 살아가지만, 스스로 우주의 본질인 마음의 행로를 밝히라는 뜻임.

 

* 부처님의 최후 설법~ 열반하시기 직전인, “사라나무 숲”에서,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아왔으나, 열반하신 뒤에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까" ~ 아난과 여러 제자들은 잘 듣거라,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내가 이미 설법한 “교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지금이나, 내가 열반에 든 후나,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가 등불”이 되고, 스스로가 의지처가 되어, “다른 사람”을 의지처로 삼지 않으며, “진리의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라(자등명, 법등명). 비구는, “법을 보는 자”이며, “법을 보는 자”는, 나(여래)를 보기 때문이다. "아난다”야,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는, 다시 보호할 이가 없어, 닦아오던 것을 잃으리라고 생각을 하지 말라. “내가 부처가 된 뒤에도” 지금까지 말한 “경”과 “계”는 곧 너희들을 보호할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이세상 모든 우주를 통털어서도, 자기 자신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다.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 즉, 이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존귀한 것이 자기 자신입니다. 이렇게, 세상 무엇보다도 존귀한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갈고 닦으면, 삼계의 모든 괴로움도 당연히 없어지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사성제 (고,집,멸,도) ~탐욕과 집착을 없애는 방법론으로, 사성제(세상의 모든 "" 즉, 고통의 원인은 →애착과 "집"착인데, 이 애착과 집착을 ""(해탈)하면, "" (열반)를 이룰수 있다. 즉, 고,집,멸,도를 말함.)가 있으며,

사성제를 이행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팔정도 (즉, ①정견 ②정사유 ③정어 ④정업 ⑤정명 ⑥정정진 ⑦정념 ⑧정정 )를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해탈에 필요한 과정으로, 6바라밀을 말하며, 육바라밀은 ①보시 ②지계 ③인욕 ④정진 ⑤선정 ⑥반야를 말합니다.

 

* 부처님의 깨달음 선언~ 초전법륜경과 초전법륜을 기록한, “마하박가”, "쌍윳다 니까야”, “율장”, “아함경”에는, 부처님께서, “오비구”(다섯 비구)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나는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비유비무)를 깨달았다. 이 “중도”는 ⓐ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 고요함과 높은 지혜와 ⓒ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중도를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여덟 가지 바른 길(존재의 본질인, 비유비무를 비추어 보기 위한, 팔정도)이니, ①바른 견해, ②바른 사유, ③바른 말, ④바른 행위, ⑤바른 생계, ⑥바른 정진, ⑦바른 생각, ⑧바른 삼매이다. 그리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 연기법)가 있으니, ①괴로움과 ②괴로움이 일어남과 ③괴로움의 원인과 ④괴로움이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윤회)은 없다”. "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들지 않으리. 이것이 고뇌의 최후이니, 내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7주간 머무셨던 그 장소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삼법인 (불변의 우주법진리인 세가지 표지) ~ ①제법무아 ②제행무상 ③일체개고 (마음으로 생겨난 허망한 것에 대하여 집착하며 괴로워하는 모습)를 삼법인이라 함. 여기에 ④열반적정 (모든 번뇌가 사라진 영원한 마음의 평정상태)을 더하여 사법인이라고 말하기도 함. 

 

교종과 선종 ~교종과 선종의 기본적 교리는 같습니다. 다만, 깨달음을 이루는 방식에 따라, 교종과 선종를 구별합니다. 즉, 교종은 연기설등 여러 논리적 교법에 따라서~~, 선종은 오직 무상무념의 참선이나, 화두에 의해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즉, 교종은 "교법"을 우선시 하면서 "참선"을 하며, 선종은 "참선"을 우선시 하면서 "교법"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추구하는 목적이 같으므로, 교종과 선종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불교를 접하는 사람에게 선종만으로 설명을 하게 되면, 논리를 잘모르게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종이 주를 이루므로, 불교의 논리를 알리는데 소극적입니다. 

 

*정혜쌍수, 교관겸수~ 정(선정,선종), 혜(지혜,교종)/ 교(교종), 관(선종)으로, 뜻은, 교종과 선종은 서로존중하고,같이 공부한다는 의미입니다.

 

신라 5교9산~신라 중엽과 신라말에 형성된, 교종 5교파와, 선종 9산문을 말한다. 그후, 고려 중기 “의천”에 의해, 천태종이 새로 성립되고, 그 후, 선종9개 산문은, 조계종으로 통합되었다. 그리하여, 교려시대에는, “5교 양종”이 형성되었다. (즉, 교종 5교파와, 천태종과 조계종의 양종)

교종5교파~①계율종(차후, 남산종. 자장율사) ②법상종(차후, 자은종. 진표율사) ③법성종(차후, 중도종. 원효) ④열반종(차후, 시흥종. 보덕) ⑤원융종(차후, 화엄종. 의상대사) 선종9산문~①가지산문(장흥,보림사) ②동리산문(곡성,태안사) ③봉림산문(창원,봉림사) ④사굴산문(강릉,굴산사) ⑤사자산문(영월,흥령사.현,법흥사) ⑥성주산문(보령,성주사) ⑦수미산문(해주,광조사) ⑧실상산문(지리산,실상사) ⑨희양산문(문경,봉암사)

 

고려 전기에,의천은, (중국의 천태 "지의스님"을 법통으로 하여) "교종"으로 "천태종"을 창종하였다.

고려 후기에, 지눌은, (중국의 육조 "혜능스님"을 법통으로 하여) "선종"으로 "조계종"을 창종하였다(선종 1대 달마, 2대 혜가~6대 혜능).

 

현재, 조계종(금강반야경을 기본경전으로 함)의 총본산은 조계사, 천태종(법화경을 기본경전으로 함)의 총본산은 구인사, 태고종의 총본산은 선암사.(조계종과 태고종은 원래 하나의 종파였으나, 기혼승에 대한, 승려인정 여부에 따라, 종파가 갈라짐)

 

* 한국 천태종~ 중국 천태 “지의”대사를 “종조”로하고, 고려 “의천”대각국사를 “개창조”로 하였으나, 천태종은, 조선시대에서 그 맥이 끊겼다. "상월원각" 대조사는, 단양 구인사 자리에서 1945년 초가로 시작하여, 콘크리트형 사찰을 짓고, 500년간 맥이 끊긴 천태종을 되살린다는 의미로, 1966년, “대한 불교 천태종”을 창종하였다. 단양 “구인사”는, 전국에 있는, 천태종140여 사찰을 관할하며, 낮에는 논밭을 갈고, 밤에는 기도를 하는, "관음기도" 위주의 종파이다. 부산 “삼광사”는 천태종 제2위 규모 사찰이다(여러 부처님뿐만 아니라, 천태종의 여러 종조 법사들도 모신다).

 

* 조계종과의 차이점~①한국 천태종​ → ⓐ기혼승은 인정않고, 비구승만 인정한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머리를 깍지 않는 것은 인정한다. 닭고기를 제외한 육식과 음주는 허용한다 ⓑ천태종 사찰에는, 한민족 고유 신앙인, “삼신각”이 없다. ② 태고종 → 출가하여도, 세간과 출세간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원융하므로, 독신인 비구승과 기혼승을 모두 인정한다(현재, 태고종 승려의 약 1/3이 독신인, 비구승이다).

 

달마대사~ 중국 선종 1대조사. 남인도 팔라국의 왕자. 출가하여, 인도불교의 28대 조사가 되었다. 470년경 남중국에 선종을 포교한, 중국 선종의 창시자이며, 중국 선종 1대조사가 되었다. 양 무제와 선문답을 주고 받았다는 일화가 있으며, 520년경에는 선종 2대조사인, 혜가에게 “선법”을 전수하였다(달마의 자세한 생멸년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6대 조사(육조)가 "혜능"이다.

 

심우도 십우도 목우도 ~대개, 대웅전 사찰의 처마밑 벽에 그려진 깨우침에 이르는 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낸것. 즉, 인간은 누구나 본심인 불성이 있는데,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보리)에 이르는 과정을, 소를 길들이는 과정에 비유한 그림이다.

 

심우 ~자신의 본심은 무엇인가를 찾는다.

견적 ~깊은 마음속에 들어가서 소(마음)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견우 ~야생에 방목되어 있는 소(마음)를 발견한다.

득우 ~소(마음)를 발견하였으나, 기회만 있으면, 도망치려하는 삼독에 찌든 검은 소(마음)이다.

목우 ~소(마음)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 코뚜레를 하는 등, 삼독에 찌든 소(마음)를 묶어두려 노력함.

기우귀가 ~마침내 길들여진 소(마음)를 끌고 피리를 불며, 자신의 집인 마음의 본향으로 돌아간다. 번뇌와 망상,욕망이 끊어진 소(마음)는 무심하여, 흰색으로 변하였고, 목동도 본성인 마음에서 나오는 피리를 불며, 무심하게 집(마음의 본성)으로 돌아온다.

 

망우존인 ~집(본성)에 돌아와 보니, 소는 온데간데 없고, 자신(마음)만 남았다. 이제까지의 소는 자신을 깨닫기 위한 방편(번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이 깨달은 사람이라는 교만과 자만도 벗어나게 된다.

인우구망 ~일원상으로 표현하며, 지금까지 방편이었던 소가 사라진뒤에는 (주관을 초월하며)자기자신도 잊어야 한다는것. 즉, 깨침도, 깨쳤다는 법도, 깨쳤다는 사람도 없는, 모든 것은 공(불성)으로 돌아 간다는 생각에 이르러,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반본환원 ~텅빈 일원상에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비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므로, 번뇌도, 망상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지혜(반야)를 체득한다.

입전수수 ~이제는 부처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인, 중생에게 복과 덕을 베풀 포대를 메고,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 하기위해 거리로 나선다.

 

삼승 ~성문승(들어서 깨달음을 얻는 사람), 연각승(12인연의 인연교법, 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사람/벽지불승, 독각승), 보살승(깨달음 추구와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함께 실천하는 사람)의 3가지 깨달음을 “삼승”이라 합니다. 부처는 대중에게 3승을, 방편적으로 말했지만, 결론인 법화경에서, 부처님의 본심을 밝히면서, 자비심을 실천하는, "보살승"(일승불)만이, 성불을 이룰수 있다 하였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자리이타 ~보살은, 보리(깨달음)+살타(중생)의 준말이다. 보살승은, 위로는 깨달음(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자비로서 중생(살타)을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즉, 보살승의 수행목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며, 보살승의 수행자세는 "자리이타"이다. "자리이타"는, 자신을 이롭게 하며, 동시에 "남도 이롭게 한다"는 뜻.

자비심 ~ 보상을 바라지 않고 중생을 사랑하고, 중생의 고통을 가엽게 여기며, 중생을 배려하여 "중생과 함께하는 마음"을 "자비심"이라고 한다. 보살승은, 이런 자비심으로, "타인과 함께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행을 한다.(도와주고, 특정종교를 믿어라~이런것은 거래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호국불교 ~ 조선에서 그렇게 불교를 탄압하였음에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살생을 금하는 종교적 신념을 버리면서까지 승병을 일으켜 국가를 지키려 했던, 즉, 국가와 민족을 자신의 종교보다 우선시하며, 자신의 깨달음은 다음생으로 미루더라도, 대의를 위해 "중생과 함께 하려는 정신"이, 이 땅의 호국불교입니다. 이러한 호국불교는 중생을 사랑하고, 중생의 고통을 가엽게 여기며, "중생과 함께 하겠다"는 자비심의 마음이 가지는, 일종의 보살행이다.

 

부처는 어디 계실까? "비유비무"이고, "비상,비비상"의 세계이며 "공"의 세계인, 적멸의 세계( 적멸 ~번뇌, 망상의 세계를 떠난, 열반의 경지)에 계신다는 겁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삼세의 모든 부처는 사바세계의 모든 번뇌를 떠난,적멸의 세계에 계시기에, 번뇌를 가져야하는 사바세계에 대하여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아래, "신묘장구대다라니경 원문과 해석~" 블로그 내용 중, 사찰의 "적멸보궁", "비로자나불" 참조 )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까? 거세의 여러 부처님은 홀로 깨친후, 적멸의 세계에 가버렸지만, 석가부처님은, 왕자의 지위를 버리면서까지, 무소유로서 수행하며, 고통받는 중생을 위한 큰 자비심으로, 기꺼이 가르침을 주고, 적멸의 세계에 가셨음. 그래서, 불자는 석가부처님의 은혜를 깊이 새기고, 그 가르침을 따르지만, 기도는 "부처됨을 미루고, 사바세계 중생을 돕겠다고 서원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등 여러보살, 나한님에게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즉, 부처님은, 중생에게 가르침을 주신 영원한, "스승"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부처님을 좌우에서 보좌하고 있는 "보살님"이나, "나한님"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소승과 대승 ~ 소승은 자신의 깨달음을 이루기 위하여, 법당이나, 어느 곳에서 홀로 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깨달음은 이룰수 있을 지라도, 타인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거나 봉사를 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수입이 없습니다. 아무리 법당에 있고 깨달음을 이루더라도 밥은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식사때가 되면, 마을이나 시내에 내려가 탁발을 하여, 그 탁발한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오직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위한 참선만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깨달음 내용이 아닌, 타인을 위한 49재나 천도재등은 불교가 아니라 말한다.

 

대승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적극적으로 타인과 함께 하려는 자비심의 보살행을 하는것입니다. 이러한 자비심의 보살행의 방법으로, 어려운 중생들의 고충을 상의해주고, 이승을 떠도는 어리석은 중생인, 영가(귀신)를 설득하는 천도재나 49재를 해주며, 여러사정으로 제사를 집에서 지내기 어려운 중생을 위하여, 제사를 위탁받아 지내 주기도 하며, 중생과 함께 하려는 적극적인 정신으로 시중에 포교당도 개설하여, 대중에 적극적으로 다가가 설법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려 주는 등, 중생의 일상사에 적극 개입하여 보살행을 하는 불교를 대승이라 한다.

 

이러한 중생을 사랑하고, 중생을 가엽게 여기며, 중생을 배려하여, "중생과 함께 하는 마음"을 가지는, 부처님의 본뜻을 실행하는, 대승적인 일을 하므로서, 어느 정도의 수입이 생기고, 이런 수입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면서도, 탁발이 없더라도 어느정도의 의식주가 해결될수도 있으며, 사찰의 유지보수 비용에 충당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비심의 보살행의 유무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입니다.

 

소승(출가승 위주)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이루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각 가지 보살로 현신하는 보살의 존재와 대승경전을 부정합니다. 오직, 자신의 깨달음을 이루고, 부처가 되어 적멸의 세계에 가버린다고 합니다그래서, 소승입니다대승(출가승+대중)은, 부처가 되는 마지막 과정으로, 중생을 위한 대원을 세우고각가지 보살로 현신하여, 중생을 도운다는 것입니다( 이 블로그 아래, "보살의 지혜" 와 관자재 보살 참조)

 

* 대승경전과 소승경전~ 석가여래는, 열반에 들기 얼마 전, 영산회상에서 열린 법회에서, 자신이, 45년동안, 설법한 “아함부”의 가르침이, 사실 “방편”이었다고 말하면서, 석가여래는, 무한한 시간 이전에, 이미 성불한, 부처임을 밝힌다. 그리고, 성불하기 위해서는 성문승, 연각승(벽지불)은 방편이고, “삼승”중에서, 오직, “보살승”으로만, 성불이 가능하다고 밝혔다(일승). 모든 보살은,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중생들이 있는 그 사바세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사성제”와 “12연기”의 수행만으로, 열반에 이르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석가여래는 본격적으로, “보살”의 존재를 말하면서, 일승으로의, 대승 설법을 시작하였다.

 

초기에 부처님께서, 2500년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중 설법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이들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 수 있을 까”를, 고심하였을 것입니다. 즉, 지금의 현대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색즉시공”, “공”, “중도”개념을, 부처님께서 2500년전의 무지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기본 소양없이, "처음"부터, 대승법을 하기는 난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의 본질적 개념인, "공", "중도"등의 설법은 차후로 미루고, "번뇌의 소멸"에 관한 기본적 소양을 가르치는데 역점을 두었던 것입니다. 기본적 소양을 바탕으로, 계율을 지키고 수행을 하면, 결국 깨달음의 “진여”를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대승을 알게 될 것이다” 생각하면서, 계율과 수행을 특히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2500년전 그 당시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어, 유인적 방편 말씀을 하시며, 12연기등 기본적 소양을 가르친 것이, 부처님 초창기 설법인, 아함경등의 "소승경전"입니다. (즉, 소승경전에서, 부처님은 이미 알고 계신, "세상의 본질적 모습을 감추고", "세상현실" 모습에 대하여, 현대인의 눈에 모순적으로 보여지는, "적당히" 수준에 맞게 설명한 것은, 2500년전 당시 사람들의 수준에 맞춘, 방편입니다). 일단, 불교에 들어오면, 세상의 본질적 모습을 가르치기 위한, 기본 소양으로, "번뇌와 번뇌의 소멸"에 관한,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제법무아 등의 개념을 가르친 것입니다. (현대인도 대부분 이해를 못하는, "색즉시공", "공", "중도"개념을, 2500년전 지적 수준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에 가르친 소승법은 대승법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이며, 어느정도 기본 소양이 쌓였을 때, 열반에 들기 전에서야, 비로소, 본론 대승설법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처럼, 부처님의 본심은 대승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기 얼마 전 열린, 영산회상 법회에서, 수행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사람에게, 부처님께서 본심인, 대승으로 설법한 경전이 바로,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등 “대승경전”입니다. 그러므로, 수준이 있는, 현대인은, 어느 정도 기본소양이 쌓이면, 부처님께서, 바른 법진리를 직접적으로 설법하신, “대승경전”으로 공부하는 것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물론, 번뇌에 관한 기본적 소양이나, 계율과 수행방법론에 있어서는, 소승과 대승이 함께 공유 합니다).

 

* 용수대사(용수, 용수보살/생몰150년? ~250년?) ~ 인도승려로, 대승불교를 체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인도중부 데칸고원의 “비다르바”출신인데, 처음에 브라만교를 공부하였으나, 차후, 소승경전을 깊이 공부하였다. 그 후, 대승경전인, 반야경 등을 공부하여, 인도에서, 석가의 연기설을 바탕으로, 대승의 공사상과 중도이론을 체계화하였다. 만년에 이르러, 인도에, 강원을 열어, 중국 등의 유학승을 가르쳤다.

 

용수대사는, 그의 저서 “중론”에서,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어, 무자성이며, “공”(비유비무)이라 하였다. 반야경에서 말하는, “”은 없음이 아니라, 서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연기”이며, “공”은, 있음과 없음을 초월한, “중도”(비유비무)라는 것이, 석가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을 용수대사는 밝혔다. 또, 석가 가르침, 반야경에서, “” 즉, “중도”는, “생하지도, 멸하지도, 상주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동일하지도,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라는 뜻의 가르침에 대하여 해설하였다. 즉, 인도승려인, “용수대사”가, 석가의 대승사상에 대하여, 처음으로 이해하고 해설하였다. 이러한 인도 “용수대사”의 “중론” 등은, “구마라습”에 의해, 중국에 전해져, 중국 ‘삼론종’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 구마라습~ 인도승려로, 오호십육국시대, “구자국”(현재 중국 신강)에 와서 살았다. 전진”의 왕 “부견”이, “구마라습”을 영접하려 했으나, “구자국”왕이 반대하자, 군사를 동원하여 강제로 잡아 왔고, 중국에서 “국사”까지 오르게 되었다. 구마라습은, 처음에 소승불교를 배웠으나, 차후, 대승불교에 귀의하고, 용수대사의 “중론”등을 번역하는 등. 인도 불경을 무려 384권을 번역하여, 중국불교 “3대 번역가”가 되었다. 용수대사의 “중론”, “십이문론”, “백론”의 3론을 번역하였는데, 이를 기반으로, “삼론종”의 유사종단인, 중국 “법성종”이 성립되었고, 그의 번역서인, “성실론”은 중국 “성실종”으로, “법화경”은 중국 “천태종”으로, “아미타경”은 중국 “정토종”이 되었다.

 

소승의 대승비방에 대한 반박

(소승은, 대승으로 가기 위한, “기본 소양”이고, “방편론”이다)

 

1. [세존] "수행승들이여, 고귀한 제자들은, 이 연기과 연생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전생에 있었는지, 나는 전생에 없었는지, 나는 전생에 무엇으로 있었는지, 나는 전생에 어떻게 있었는지, 나는 전생에 무엇으로 있다가 무엇이 되었는지' 숙세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나는 내세에 있을지, 나는 내세에 없을지, 나는 내세에 무엇으로 있을지, 나는 내세에 어떻게 있을지, 나는 내세에 무엇으로 있다가 무엇이 될 것인지' 내세로 달려가거나, '나는 현세에 있는지, 나는 현세에 없는지, 나는 현세에 무엇으로 있는지, 나는 현세에 어떻게 있는지, 나는 현세에 무엇으로 있다가 무엇이 되는지' 현세에 의혹을 갖게 되거나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

그 이유는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고귀한 제자는 있는 그대로 이 연기와 연생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잘 관찰하기 때문이다.”

 

→ 이것을, 석가는 현세와 내세, 중음신, 윤회를 부정했다고 주장한다. ⟹ 이 글에서, 계속, “나는”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음은, 석가처럼(“나”처럼), 지혜를 증득하고, 깨달음을 얻으면, 윤회하지 않고, “진여”에 들기 때문에 전생, 내생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이것을, 석가께서, 윤회를 부정했고, 현세도 부정했고, 사후세계도 부정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부처의 경지와 중생의 경지를 구별 못하고, 주장일 뿐이다. “고귀한 제자”는 지혜를 증득한 제자를 말한다. 지혜를 증득하여, 깨달음을 얻은 자는, 생사윤회의 현세와 내세, 중음신, 윤회가 없지만, 번뇌를 소멸못한, 중생은, 생사윤회의 현세와 내세, 윤회를 위한 중음신, 그리고 윤회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2.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관자재보살은 그 눈 가운데서 해와 달을 내고 이마 가운데서는 대자재천을 내며, 어깨로는 범왕천을 내고, 심장으로는 나라연천을 내며, 어금니로는 대변재천(大辯才天)을 내고, 입으로는 풍천(風天)을 내며, 배꼽으로는 지천(地天)을 내고, 배로는 수천(水天)을 내니, 관자재의 몸은 이와 같이 여러 천을 출생시키느니라(불설대승장엄보왕경)

 

→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주장이고, 창조를 주장하는 말이라 주장한다. ⟹ 관자재 보살은 진여를 체득한 자입니다. 진여는 자신의 본성이고, 법성이다. 이 법성(진여)를 “의인화”하여 부르는 이름이, “비로자나불”(법신불)이다. 자신의 법성(진여, 비로자나)에서, 번뇌의 물결이 치면, 생노병사의 윤회가 생기고, 이승과 저승을 오가게 된다(내세). 즉, 자신의 법성은 모든 생명과 존재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즉, 진여(법성)에 번뇌가 일어나면, 생사윤회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관자재보살 즉, “법성의 어깨에서 혹은 배꼽에서, 어금니에서 생명의 탄생이 시작되었다”라는 설법은, 2500년전,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하신 방편설법입니다. 번뇌(업)가 모든 만물의 근원이지, 자신의 법성 즉, “진여”를, “의인화”한, “비로자나불”이 창조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법성이 모든 만물의 근원이고, 자신의 “법성”에 번뇌가 묻어 생명이 탄생되고, 윤회가 이루어 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번뇌”를 없애면, 원래의 법성으로 돌아가, 윤회없고, 내생도 없다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법성을 “의인화”한 것이, 곧 비로자나불(법성불)입니다. 이것을, “법신불”의 창조라 주장하는 망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는 법이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디가 니까야, 대반열반경) → 이것으로 소승은, “모든 것은 소멸하고, “무아”도 소멸하므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소승처럼 모든 것이 소멸하고, 법성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도 소멸하고 없다면, 윤회도 없고, 사후세계도 없다는 뜻입니다. 즉, 소승의 주장은, 번뇌없는 부처가 되면, "부처자체도 소멸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면, 번뇌의 소멸을 위해, 수행을 할 필요도 없고, 깨달음을 이루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은, 석가의 기본 개념인, 윤회를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따라서, 윤회를 부정하면, 이미 불교가 아닙니다.

 

⟹ 형성된 것은 당연히 소멸한다. 하지만 "진여(법성)는 소멸하지 않는 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반야심경 내용중 "불생불멸"참조). 번뇌가 소멸된 존재를 "법신불"이라 말하며, 이를 의인화하여, "비로자나불"이라 합니다. 이 법성(진여)에 업이라는 번뇌가 묻어, 윤회하는 데, 진여를 포함한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주장은, 번뇌없는 부처가 되면, "부처 자체도 소멸된다는 주장"이므로, 불교논리, 자연의 법칙인 윤회,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윤회 진리를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것 입니다. 즉,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이 되므로, 잘못된 견해입니다.

 

석가모니 ~ 왕자로 출생하였지만, 인간의 생노병사의 고통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큰뜻을 품고,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29세에 출가하여 6년간 고행후, 35세에 득도함. 그후 45년간 설법하며 5천여권의 경전을 남기고, 80세에 열반에 드심. (석가는, 전생에, 이미 완성된, “호명보살”로서, “도솔천”에서, 천인들을 교화, 설법하셨고, “자비심”으로, 중생교화를 위해, 오셨기에, 쉽게 깨침을 완성하고, 그 "완성된 경지"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생과 같은, “육신”을 가진 몸으로(화신), 오셨기에 당연히 “육신”의 제한을 받아, 태어남과 죽음의 고통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불교의 4대축일~①탄신일(현재 네팔지역인, 카필라왕국의 슈도다나국왕(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BC 624년 음4.8일 탄생) ②출가일(BC595년 음2.8일) ③성불일(성도일/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한날, BC589년 음12월8일) ④열반일(BC 544년 음2.15일. BC 544년이 불기의 원년이 됨)

4대성지~①룸비니(네팔/탄생) ②보드가야(인도/정각을 성취) ③사르나트/녹야원(인도/초전법륜지) ④쿠시나가라(인도/선택한 열반장소)

 

(석가부처님은, "율장대품"과 "초전법륜경"에서, 연기법으로 깨달음을 이루었다 합니다. 즉, 초야에 전생을 보는 숙명통을, 중야에 업과 번뇌에 따른 미래를 보는 천안통을, 후야에 번뇌의 소멸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는 누진통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와같은 삼명통에의한, "고집멸도"라는 사성제의 진리를 깨닫고, 더 이상 윤회가 없음도 알게 되었다 합니다. 이와같이,초야,중야,후야의 시간을 "새벽별 보고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석가 생애~ ① 탄생~ 네팔, “룸비니”에서 탄생하였다(기원전 624년 음4월8일). 석가탄생은, 네팔 "카필라"왕국, 슈도다나왕(정반왕)의 왕비인, "마야부인"이, 흰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 오는 꿈을꾸고, 임신하였고, 관습에 따라 친정인, “데바다하”로 향하던 중, “룸비니”에서 (당시의 역법으로)음력4월8일(현재의 역법으로는 음력2월8일에 해당), 석가를 낳았다고 한다. 생후 7일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 손에서 자랐다. 16세에 “콜리야”왕국의 공주 “야소다라”와 결혼을 하고, 아들, “나후라”(라휼라, 밀행 제일. 석가아들. 십대제자)를 낳았다. 아들이 있으니, 왕국의 후계자 근심을 하지 않고, 29세에 출가 하였다(기원전 595년 음2월8일). 이후, 그 당시 수행자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육신을 학대하는 6년간, 고행을 하였으나, 정법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고행을 그만 두게 되었다. 이때 “수자타”라는 여인은, 오랜 고행으로 인하여, 빈사상태로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석가를 만나,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따뜻하게 끊인, “우유죽”을 공양하게 되었고, 이를 먹은 석가는 기운을 차리게 되었다.

 

② 정각을 성취~ 인도, “보드가야”에서 정각을 성취하였다(기원전 589년 음12월8일). 석가는, 전생에, “욕계” 제3천상인, 도솔천에서, “신”과 “천인”들에게 설법하시던 “호명보살”이었는데, 중생교화를 위해, ​중생처럼 육신을 가진, “화신불”로, 이 땅에 오셨기에, 쉽게 연기론을 바탕으로, “사성제”를 깨닫고, 중도사상(공사상, 비유비무, 색즉시공)으로, “진여”에 의한, “화엄세계”를 확인하는, 득도에 이르렀다.

 

* 인도 북동쪽에 있는, “가야”(Gaya)라는 도시에서, 30분정도 떨어져 있는, “보드가야”(Bodh Goya)라는 마을에는, “마하보디 대탑”이 있다. 그곳에 있는, 대탑” 서편과 “보리수나무” 동편 사이의 자리에서, 49일간 정진끝에, 깨달음을 완수하였다고 한다. “마하보디 대탑”인근에는, 빈사상태였던, 석가에게, 우유죽(우유푸딩)을 대접하였던, “수자타 탑”(스튜파, “수자타 Garh”)도 있다.

 

​* 보리수 나무~ 인도의 보리수나무는, 아열대지방의 “무화과”에 속하는 나무이다. 꽃이 피지 않으며,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맺는다. 한국에서는 “달피나무”를, (일명)”보리수”라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리수라 불리는, “달피나무”는, 인도 보리수와 잎의 모양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종이며, “피나무과”에 속한다. 피나무과에 속하는, “달피나무”의 잎과 나무, 뿌리는 전부 약용으로 쓰이며, 그 열매는 단단하여, 염주 제조에도 쓰인다. 정작, “보리수 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는, “뜰보리수 나무”이다. 즉, 인도 보리수는 “무화과”이고, 한국의 일명 보리수, 달피나무는 “피나무과”이다. 그리고, 뜰보리수나무가 “보리수나무과”이다.  이들 3가지 나무는, 모두 서로 다른 종이다.

 

* 부처님의 깨달음 선언~ 초전법륜경과 초전법륜을 기록한, “마하박가”, 쌍윳다 니까야”, “율장”, “아함경”에는, 부처님께서, “오비구”(다섯 비구)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나는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버린 후, “중도”(비유비무)를 깨달았다. 이 “중도”는 ⓐ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 고요함과 높은 지혜와 ⓒ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중도를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여덟 가지 바른 길(존재의 본질인, 비유비무를 비추어 보기 위한, 팔정도)이니, ①바른 견해, ②바른 사유, ③바른 말, ④바른 행위, ⑤바른 생계, ⑥바른 정진, ⑦바른 생각, ⑧바른 삼매이다. 그리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 연기법)가 있으니, ①괴로움과 ②괴로움이 일어남과 ③괴로움의 원인과 ④괴로움이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윤회)은 없다”. "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다시는 고통의 수레에 말려들지 않으리. 이것이 고뇌의 최후이니, 내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7주간 머무셨던 그 장소에 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최초 설법지~ 인도, “사르나트”(녹야원)에서 최초로 법을 설하였다(초전법륜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 선언을 직접 들은, “교진여”(남방에서는 "꼰단야”)는, 그 자리에서 제자가 되었고, 4명의 비구들도 차례로 제자가 되었다. 이제 부처님은, 5명의 비구를 상대로 법을 설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불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 후, 45년동안, 설법하시고, 5천여권의 경전을 남겼다. 인도는 방대하여,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고, 부처님은 주요활동 지역인 마가다국을 중심으로한, 평민언어인, "마가디어"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아함경에 속하는 경전은 2천여권에 달하는 데, 암송으로 전해지다가, BC5세기~BC4세기경 사이에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로 옮겨졌다.

 

* 최초 사원 “죽림정사”~ “죽림정사”는, “마가다국”의 “왕사성”부근에 있었던, 최초의 불교 사원이다. “가란타” 장자가, 죽림을 헌상하였고, “빔비사라” 마가다국왕이, 사원을 건립하여, 기증하였다.

 

마지막 설법지~ 인도, “베살리”(바이살리,비사리)는, 석가45년 설법의, 마지막 설법지이며, 속세를 떠날 시간이 다가 왔음을, 대중에게 미리 알린 곳이다. 또 “베살리”는, 석가의 어머니, “마하파제파티”를 포함한, 500여명의 여성이 출가한, 최초 여성 출가지 이기도 하다(최초의 비구니승단). 또한 석가의 마지막 “안거 장소”이다. “베살리”의 “콜로아”에는, 2개의 불탑(스튜파)이 있다.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봉분(왕릉)"처럼 생긴(스튜파)인, 제1불탑은, “아난다 스튜파”(다문제일, “아난다”의 불탑)이다. 이 제1불탑 앞에는 기원전 250년경에 “아쇼카”대왕이 세운 높이 14.6미터, 거대한 “석주”가 있다. 석주 꼭대기에 있는, “사자상”의 머리는, 열반지 “쿠시나가라”를 향하고 있다. “아난다 스튜파”근처에, 부처님이 머무신, “대림정사”가 있었는데, 현재 유적을 발굴 중에 있다.

 

인근에 있는, 제2불탑을 ”랏치비다 스튜파”(근본사리탑)이라 한다(원래 있었던 사리탑 자리에는, 현재, 지붕을 씌운 터만 남아 있다. 그 불탑 속에, 모든 사리를 8분할로 나누어, “랏치비다족”이 받은, 그 1분할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었는데, 현재는 뉴델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이곳 "베살라"에 머무를 때, 가뭄이 심하여, 석가께서, 수행자들에게, 한명씩 모두 흩어져, 안거를 지내라고 하였고, 안거가 끝나고, 흩어진 대중이 모인 자리에서 “3개월 후에 열반에 들겠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간다키”강을 건너, 열반지, “쿠시나가르”를 향해 길을 떠나게 되었다.

 

* 유골(사리) 배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의식에 맞춰 화장을 하였는데, “마가다국” 의 “아자타사트루”왕을 비롯한 7개국의 국왕들이 모두 다투어 석존의 유골(사리)을 분배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열반지의 “쿠시나가라” 국왕이, 이것을 거절하여 분쟁이 일어났다. 마침내 현자 “도로나” 비구의 조언으로 부처님의 유골(사리)은 8개국에 골고루 분배되고, 화장한 재와 항아리는 또 다른 두 왕에게 분배되었다. 이후, 유골(사리)은 각기 그 나라에 분장되어 봉안 되었으며, 부처님을 기리는 열 군데의 큰 사리탑(스튜파)이 세워지게 되었다.

 

* "베살라"에서의 마지막 설법~ ⓐ그대들은 서로 화합하고, 서로 공경하여 다투지 말아라. 함께 교법을 지키고 배우며 닦기를 부지런히 하여 “도의 기쁨”을 누리어라. 그리고 “아난다”야, 수행자가 내게(부처님) 기대할 바가 있다는 생각은 옳지 못하다.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다. 나의 가르침 속에는 제자들에게 숨긴 채, “스승의 주먹 속에 감추어진 비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이제까지 안팎을 가리지 않고, 모든 “법을 설하였다.

 

ⓑ 비구들아,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계율”을 존중하되,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듯이, 가난한 사람이 보물을 얻은 듯이, “계율”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계율”은 너희들의 큰 스승이며, 내가 세상에 더 살아있다 해도 이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계”는 해탈의 근본이니라. 이 “계”를 의지하면, 모든 “선정”이 “계”로부터 나오고, 괴로움을 없애는 “지혜”가 나온다. 그러므로 너희는 “청정한 계를 범하지 말라. 청정한 계를 가지면 좋은 법을 얻을 수 있지만, 청정한 계를 지키지 못하면 온갖 좋은 공덕이 생길 수 없다”. “계”는 가장 안온한 “공덕”이 머무는 곳임을 알아라.

 

ⓒ 모든 것은 쉴 사이 없이 변해가니, 부디 마음속의 “분별과 망상”과 그밖의 여러 가지 대상을 버리고, 한적한 곳에서 부지런히 “정진”을 하라. 부지런히 정진하면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일”(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방탕하게 행동하는 것)하는 것을, 원수와 도둑을 멀리하듯이 하여라. 나는 “방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정각”을 이루었다. 마치 낙숫물이 (바위에)떨어져, 돌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정진”하여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비구들아, 이것이 “여래의 최후 설법”이니라.(장아함경, 유행경)

 

열반지~ 이미 3개월 전에, 열반을 예언하고, 스스로 인도, “쿠시나가라”를 선택하시어, 열반에 들었다(기원전 544년 음2월15일. 80세). * 케사리아 발우탑(스튜파)~ “쿠시나가르”로 향하던 중, 뒤따르는 “왓지”인들에게, 부처님이 쓰시던 “발우”를 건네 주었는데, “발우”를 건네 받은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 “케사리아 스튜파”(봉분)이다. 이 “발우”는 부처님이 쓰시던, 세상에 하나 뿐인 유일한 유물인데,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열반 모습~ “열반경”에는~, ⓐ 부처님께서 “파바 마을”에 이르러, 어느 망고 나무 아래에 앉자, 이 마을 대장장이 아들, “춘다”가 부처님께 찾아와 인사를 올리고, 설법을 들었습니다. 그 설법을 듣고 “춘다”가 감동을 해서, 다음날 아침 식사에 부처님을 초대하였다. 부처님은 그 초대를 승낙을 하였다. 그 해 엄청난 흉년이 들어서, 어떤 부자도 부처님 일행을 초대하기 어려웠는데, 가난한 “춘다”가, 많은 음식을 마련한 것을 보고, 대중이 전부 놀랐습니다. 차려놓은 음식 중에서, 한 가지 음식을, 부처님 발우에 더는데, 부처님께서 “그 음식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춘다여, 이 음식은 누구도 소화할 수가 없단다. 이 음식은 비구들에게 돌리지 마라. 이 음식을 땅에 묻어라”고 말씀하셨다. 이 음식은 ‘스카라 맛다바’라는 음식이었습니다. (“스카라 맛다바”~ 고대 인도음식으로, 전단나무 “버섯”으로 만들었다고도 말하기도 하고, “돼지고기”로 만들었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상하기 직전의 음식"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 그런 말씀을 한 후, 부처님 혼자만, 그 음식을 먹었고, 부처님께서 “춘다”를 위해서 설법까지 해주었습니다. 설법이 끝난 후, “아난다여, 배가 몹시 아프구나, 일어나 어서 길을 떠나자”고 말씀하셨다. 길을 걷는 동안에, 피가 섞인 설사를 했다고 하므로, “급성 식중독”이었다. (즉, 부처님께서는, 이 “스카라 맛다바”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지 않도록 하고”, “혼자 먹은 후, “급성 식중독”병을 얻어, 결국, 열반에 들게 되었다”한다). (옛부터 인도에서 전래되어 오던 민간신앙인 "신화"(비슈뉴, 시바)의 내용중에서, 중생을 위하여 기꺼이 독배를 마심으로서 "푸른 목"을 가지게 되었다는 "시바"신에 대한 찬탄이, 신묘장구대다라니 내용입니다. 이런 중생을 위하여 독배까지 마실 수 있는 "시바"신의 중생을 위한 자비심은, 자비심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서 행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석가부처님은, 중생을 위한 자비심으로, “식중독위험”이 있는 음식을, 다른 사람들은 먹지 못하게 하고, 정성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 “공양물”을, "대표"로 먹고, 열반에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런 와중에도, 부처님께서는, “춘다”걱정을 하여, “아난다”에게, “춘다”의 근황을 물었다. “춘다”는 몹시 걱정과 근심을 하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은, “제 분수도 모르고, 가난벵이가, 무리하며, 부처님을 초대하고, "상하기 직전의 음식"으로, 부처님을 돌아가시게 했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고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춘다”를 옆에 불러 놓고, “아난다”를 향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공덕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큰 공덕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인데, 그런 공양 중에서도, 가장 큰 공덕은, 2가지가 있는데, “여래가, "깨달음 직전"에 먹는 공양과, 여래가, "열반에 들기 직전"에 먹는 공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춘다”에게, “춘다여, 그대는 장차 장수할 것이오. 그대는 장차 하늘 나라에 태어날 것이오. 그대는 장차 왕으로 태어날 것이오.”라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깨담음을 얻기 직전에 먹은 공양은, “수자타”의 공양입니다. 수자타”라는 여인은, 오랜 고행으로 인하여, 빈사상태로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석가를 만나,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따뜻하게 끊인, “우유죽”을 공양하게 되었고, 이를 먹은 석가는 기운을 차리게 되었다. 그후,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그 “수자타”의 공양과 맞먹는 공덕이, "상하기 직전 음식"을 공양한, “춘다”에게도, 있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 단순히 “춘다여, 걱정하지 마라. 춘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이렇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비유를 들어서, 누가 봐도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도록, 세상 최고 공덕은, “하나는, 열반을 증득하기 전에, 하나는, 열반에 들기 전에 먹는 공양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춘다”의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함은, 역시 이렇게 묘한 언어를 써서, 대중이 설득되고, 중생이 편안해,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 사라나무숲~ "아난다여, 자 우리는 이제부터 “히란냐바티”강의 맞은 편 언덕, “쿠시나가”라 근교, 여래가 “입멸”할 곳, “사라나무 숲”으로 가자”. 쿠시나가라에 도착한 부처님은, “사라나무 숲”으로 가셨습니다. 가사를 4겹으로 접어서, 길쭉하게 깔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붙이고, 머리는 북쪽으로, 발은 남쪽으로, 얼굴은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누우셨습니다(열반상 모습, 와불상 모습). 그리고는, “오늘 저녁에 열반에 들겠노라”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난다”가 물었다. “열반에 드시려면, 왜 이런 외진 곳, “쿠시나가라”입니까? “왕사성”도 있고, “사위성”도 있고, “카시성(바라나시)”도 있지 않습니까. 그곳은 재가 수행자도 많고, 출가 수행자도 많지 않습니까?” 정그러시면, "쿠시나가라"의 말라족(왕족) "왕궁” 안에서 열반에 드시지, 왜 이런 외진 숲 속에서 열반에 드시려고 합니까?” “아난다여, 그런 말을 하지 마라. 먼 미래가 되면, 이 곳은 성스러운 곳이 되리라”. 또, 내가 이 숲 속에서 열반에 들어야, 누구든지 나를 보고 싶은 사람은, 모두 올 수가 있다. 마을에 가서 오늘 밤에 여래가 열반에 드니, 여래를 친견할 사람은 누구든지 친견하라고 사람들에게 일러라”(만약, 왕궁에서 열반에 들면, "천민"은 출입을 못하니까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숲 속은 아무 제한 없이, 자기만 원하면 누구나, 올 수가 있도록, 모든 사람을 배려 하신 것입니다)

 

그때 “우파바나”비구가, 열반하시려는, 부처님의 정면에 서서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우파바나여, 비켜나거라. 나의 앞에 서 있지 말라”. “아난다”가 여쭈였다. "세존이시여, 어찌된 일이십니까? 어찌하여 “우파바나”비구에게 비켜나라 하십니까?", "아난다여, 너희에게는 보이지 않으리라. 지금 이곳에는, 시방세계의 "모든 신"들이, 여래를 한 번 보려고 모여 들고 있다. 이 “쿠시나가라”의 “사라나무 숲” 주위 10유순 안에는 큰 위력을 지닌, "신"들이 빽빽히 들어서 보고 있다. 그런데 “우파바나”가 가로 막고 서 있기 때문에, 저 "신"들에게 여래가 잘 보이지 않고 있느니라."하셨다. 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풍악소리가 나고, 꽃잎이 막 떨어졌습니다. 대중들이 이를 기이하게 쳐다보면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을 갖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늘의 "신"들이, 여래의 열반에 임해서, "마지막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아난다”여, 이것은 여래에게 올리는 제1의 공양이 아니다. 여래에게 올리는 "제1의 공양"은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하는 것이다”고 하셨다(그래서, 예불을 올릴 때, 수행정진을 뜻하는, “오분향” 공양을 올립니다. * 오분향~계율을 지키는 향, 선정을 닦는 향, 지혜를 증득하는 향, 해탈의 향, 해탈지견의 향)

 

ⓖ "아난다"는, 동네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열반을 알렸습니다. “아난다”가 슬픔을 못 이기고 있으니, 부처님께서 “아난다”를 위로 합니다.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있으리라”. 부처님을 친견하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밤이 깊어서 친견이 끝났습니다. 이제 조용히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를 기다리는, 마지막 시간이므로, 대중들을 다 불러 모으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수행 정진해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대중들이여,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이르노라. “만들어진 것은 모두 변하는 법이다, 게으르지 말라. 열심히 정진하라. 그대들은, 수행을 완성하여라”. 그러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그냥 저녁에, 누구랑 얘기 나누다가, 내일 아침에도 다시 만날 사람처럼, 편안하게 “열반”에 드셨습니다(향년 80세). “열반”이라는 말은,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는 "생사일여"경지이며, 마음속에 어떠한 두려움이 없는 경지를 말합니다.

 

부처님의 최후 설법~ 열반하시기 직전인, “사라나무 숲”에서,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아왔으나, 열반하신 뒤에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까" ~ 아난과 여러 제자들은 잘 듣거라, 내가 열반에 든 뒤에는, 내가 이미 설법한 “교법”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지금이나, 내가 열반에 든 후나,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가 등불”이 되고, 스스로가 의지처가 되어, “다른 사람”을 의지처로 삼지 않으며, “진리의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라(자등명, 법등명). 비구는, “법을 보는 자”이며, “법을 보는 자”는, 나(여래)를 보기 때문이다. 아난다”야,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는, 다시 보호할 이가 없어, 닦아오던 것을 잃으리라고 생각을 하지 말라. “내가 부처가 된 뒤에도” 지금까지 말한 “경”과 “계”는 곧 너희들을 보호할 것이다.

 

ⓑ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은 앞으로 공부하는 “수행방법”을 어떻게 하오리까" ~ 그대들이 의지 할 수행법은 주로 “사념처관”을 닦도록 하여라. 첫째로 신념처를 관하고(육신은 살과 뼈와 피와 고름 등, 여러 더러운 것들이 인연 따라 잠시 모인 것이니, “부정”하다고 관찰하고), 둘째는 수념처를 관하고(중생들이 “낙”이라고 여기고 집착하는, 재물 이나, 음행이나, 권속이나, 권세 등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필경 고통의 결과를 가져오는 근원으로 관찰하고), 셋째는 심념처를 관하고(인간의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고 항시 “변화하고 바뀌므로” 하여, “고정된 상이 없다”고 관찰하며), 넷째는 법념처를 관하여라(“법성”을 제외한, 일체 모든 것은, 번뇌로 이루어진, 허망하고 무상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고”, 고정된 실체가 없으니, “나”라고 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고정된" 실체가 없는 “나의 소유”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소유”임을 관찰하도록 하여라).

 

* 무소유~ 마음의 무소유를 의미한다. 부처님 말씀에, “고정된 실체가 없는 ‘나의 소유’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소유’임을 관찰하도록 하여라”(사념처 중 '법념처'를 관할 때). 즉, ‘자아’의 실체는 있지만, ‘고정된 것’이 아니다(무아). ‘자아’의 실체가 고정된 것이 아닌 데, ‘나의 소유’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므로, ‘모든 나의 소유’는, ‘무소유’임을 관찰하여라’는 부처님 말씀입니다('나의 소유'라 말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나의 소유'가 아닌, '무소유'이다). * 색즉시공 = 비유비무 = 공 = 제행무상 = 양자역학 → 모든 존재는, 영속적 실체가 없으며, [① (불교) 인과, 연기~ ② (양자역학) 관찰자~]와의, “상호작용”하는 “관계만 있을 뿐이다(양자역학에 의한,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논리)

 

* 무아”는, "내가 없다"가 아니고, 나의 “육신과 마음”은 항상 변하므로,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내가 없다면, 무슨 인과응보가 있고, 윤회가 있나요? ​ 번뇌가 없어져도, “무아”는,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무아”가 변동되어, “자아”의 기반으로, 비로소, “진여”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아”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하여 "무아"라 말합니다(즉, 번뇌에 쌓인, “자아”의 실체는 있지만,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은 변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즉, 모든 존재의 실체가 있지만,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를, “제법무아”라 말합니다.

 

ⓒ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저 난폭한 “육군비구”(부처님 당시에, 악행을 일삼은 난타, 발난타, 가류타이, 천나, 아설가, 불나발의 여섯 비구를 말함)들이, 번번히 나쁜 짓을 저지르면, 그들을 어떻게 징계하고 대처 해야 하옵니까"~ "그런 사나운 무리들이, 아무리 충고하여도 뉘우치지 않고, 그 버릇을 고치 지 않을 때에는, 그대들은 그들과 절교하고, 모든 일에 그들을 상대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뉘우칠 것이니, 침묵으로 다스리는 대치를 하도록 하여라"

 

ⓓ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교법을 모아서 정리하여야 하겠사온데, 그 경전 첫 머리와 끝말에 무슨 말로써 적으오리까"~ 첫머리에, "이와 같이 내가 들었었다”(여시아문), 그리고,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설법 할 적에 모여든 대중들은 누구, 누구임을 반드시 밝힐 것이며, 끝말에는, “여러 대중이 환회심으로 법문을 듣고, 믿고 받들어 수행 할 것을 다짐하고” 물러 갔느니라~라고 적도록 하여라".(열반경)

 

* 방편 설법, 부정관 수행법~석가 부처님은, “장아함경”에서, “음욕”이 많은 사람에게, “머리에서 발끝까지, “육신”은 똥, 오줌, 땀으로 가득차고, 냄새나는 것이므로, 탐낼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관”하여라. “육신”에 대한 아름다움과 추함을, 있는 그대로 “관”하는 “부정관 수행”을 수행하면, “육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설법하셨다. 부처님이 “부정관 수행법”을 말씀하신, 이유를, 잘못이해한, 일부 제자들이, 목숨을 끊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자결하지 마라"는 계율을 만들게 되었고, 이후, 석가 부처님은, 상대방의 수준과 근기에 따라, “방편”으로, 설법하게 되었다. 즉, 근기가 약한 제자에게는, 그에 알맞은 수준으로, 근기가 높은 제자에게는, 높은 수준의 설법을 하였다. 이런 방편에 따른 설법은, “아미타 부처님 수인”이, 중생의 근기 수준에 따라, “아미타 9품 정인”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부정관 수행법~”육신”의 더러움을 “관” 하여, “음욕”이 많은 사람이 닦는 수행법]

 

같은 이치로 쓰여진 방편~ ⓐ석가는, 룸비니에서, 마야 부인의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낳았다”~ 당시 사회 관습상, 탄생과 출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이유로, “육신 탄생” 모습을 “방편”적으로 표현하였다. ⓑ석가 탄생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안당안지”를 외쳤다”~ 당시 중생의 근기, 수준에 따라, “화신”의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석가가 "육신을 기진 중생의 모습으로(화신)",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을, “방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경전에는 이렇게, 방편적으로 설법한 내용이 많이 있다.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탑

 

연기론 ~ 인연생기의 준말로서,모든 존재현상인 유위는, 직접적인 원인인 "인"과 간접적 원인의 "연"에 따라 생긴것이라 합니다. 즉, 모든 존재현상은 고정적,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있음으로(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있고(저것이 없고), 이것이 생김으로서(이것이 없어짐으로서) 저것이 생기는 것(저것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연기설은 아뢰야식연기, 원효의 대승기신론의 진여연기(여래장연기), 화엄종의 법계연기, 진언종의 육대연기등이 있습니다.

 

한편, 석가모니는 12연기설에서, 우주는 누가 만들수도 없고, 없앨수도 없으며,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불생불멸), 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으며(부증불감), 서로 서로 의지하며, 원융무애하게 연기적으로 존재한다며, 이러한 연기법은 여래(부처)가 나타났던, 아니든, 본래적으로 항상 우주법계의 법으로 존재하는, 우주의 본래적 존재법칙이라는 것입니다.즉, 창조주가 존재하여 물질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불교 우주론) * 색즉시공 = 비유비무 = 공 = 제행무상 = 양자역학 → 모든 존재는, 영속적 실체가 없으며[① (불교) 인과연기~ ② (양자역학) 관찰자~]와의, “상호작용”하는 “관계만 있을 뿐이다(양자역학에 의한,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논리)

 

12연기설 ~ ①무명(지혜가 밝지 못하여, 자신에게 "진여" 즉, "법성"이 있음을 모르는, 중생) → ②행(의지적 작용) → ③식(보이는 상에 대한 인식,식별) → ④색(신체의 구성요소) → ⑤육입(안,이,비,설,신,의,등 인간의 6가지 감각기관을 말함). [한편, 6가지 감각기관에 대응하는, 6가지 인식대상은, 색,성,향,미,촉,법을 말합니다. 즉, 안→색(눈으로 보는 모양,색깔), 이→성(귀로 듣는 소리), 비→향(코로 맡는 향기), 설→미(혀로 맛보는 미각), 신→촉(신체의 감각), 의→법(생각의 대상인 법). 여기서 6가지 감각기관 x 6가지 인식대상 = 36가지 x 3(과거, 현재, 미래의 일) = 108가지의 번뇌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 ⑥촉(감각) → ⑦수(감각을 통한 느낌) → ⑧애(좋아함) → ⑨취〔오온에 대한 집착과 번뇌). [오온~6가지 감각기관과 6가지 인식대상으로 발현되는 색.수.상.행.식을 말하는데("색"~신체의 구성요소 / "수"~감각을 통한 느낌 / "상"~6가지 감각기관과 인식대상의 보이는 모습 / "행"~의지적 작용 / "식"~보이는 상에 대한 인식과 식별),

 

반야심경에서, "다섯가지 쌓임이 공함을 비추어 보고" → "오온의 본질이, 공(비유비무)함을 비추어 보고" → 즉, "지혜를 증득한 관자재보살은, 오온이 "비유비무"함을 비추어 보고(비유비무한, 진여를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너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오온은, 육신의 "번뇌"로 비롯되어, 시시때때로, 항상 변화하므로, 나를 비롯한 모든 것에, 고정불변한 것이 없다"즉, 제법무아, 제행무상]

 

→ ⑩유(존재함) → ⑪생(삶을 영위) → ⑫노사(늙고 죽음)의 12연기입니다. [오온중에서, 업이 주로 생기는 3가지인, 신(몸),구(입),의(생각)을 특히, 삼행처라 말한다. 색,성,향,미,촉의 5가지 감각에 의해 일어나는 "식욕, 음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을 "오욕"이라 말한다.]

즉, 6가지 감각기관 ~ "안이비설신의" → 6가지 인식대상 ~ "색성향미촉법" → 감각기관과 인식대상으로 발현 되는, 오온 ~ "색수상행식"

이러한 12연기의 각항목은 앞의 전제조건으로, 뒤가 존재 또는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생사는 불변의 자아가 이끄는것이 아니라 12연기의 연속과정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도, 인간의 영혼인 귀신도, 신도, 부처도 결국, 자신의 업에 따른, 12연기에 의해 존재하는, 존재의 한가지 형태라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을 위하여, 보살은 이승에 나투시어 중생을 도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연구자 (AI연구자)들이 AI연구와 AI프로그램 설정을 위하여, "지식"과 "그 지식을 아는 것"에 대한 차이와 그것을 프로그램정의하는 방법을 찾다가, 석가의 연기론 깨침을 바탕으로, 연구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한다. 그 결과 현재 인류는 AI를 실생활에 이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제법무아 ~ 불성(법성)은 언제나 ​진리의 모습으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데, 나를 포함한 일체의 모든 존재는 잠시 인연따라 연기법으로 존재하므로, "자아"라고 할만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모든 존재는, 불성/법성,우주의 본래적 법,비로자나에서 비롯되어 업과 번뇌로서, 인연따라 존재한다. 인연과 번뇌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아". 즉, 고정된 자아가 없다하여 "무아"/들리고 보일 뿐~, →들리는 나쁜 소리에(아뢰아식), 분별심으로 "자아"가 나쁘게 반응하면(업), →"자아"변화 → 나쁜 인연 발생(인연따라 생겼으므로, 인연이 없어지면, 나쁜 인연도 없었다. 본래의 "자아"는 공 즉, 변화하는 "무아"였다)

 

즉, 무아”는, "내가 없다"가 아니고, 나의 “육신과 마음”은 항상 변하므로,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내가 없다면, 무슨 인과응보가 있고, 윤회가 있나요? ​번뇌가 없어져도, “무아”는,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무아”가 변동되어, “자아”의 기반으로, 비로소, “진여”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아”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하여 "무아"라 말합니다(즉, 번뇌에 쌓인, “자아”의 실체는 있지만,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은 변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즉, 모든 존재의 실체가 있지만,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를, “제법무아”라 말합니다.

 

제행무상 ~ 우주의 모든 사물은 "고정"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한다(모든 사물은, 비상,비비상에서 비롯되어, 인연따라 그 모습(상)은 끊임없이 생멸하고 변화한다. 인연따라 끊임없이 생멸하고 변화하는 "상",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아"로 보여지는 "상" 즉, 고정된 상이 없다하여 "무상​"/인연따라, 들리고 보일 뿐~). 즉,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의 “모습과 상”은, 변하여, 고정된 실체가 아니므로(즉, “모습과 상”이 있지만,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를, “제법무상”라 말합니다. * 색즉시공 = 비유비무 = 공 = 제행무상 = 양자역학 → 모든 존재는, 영속적 실체가 없으며[① (불교) 인과연기~ ② (양자역학) 관찰자~]와의, “상호작용”하는 “관계만 있을 뿐이다(양자역학에 의한,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논리)

 

번뇌와 보리 ~반야경에서, "번뇌즉보리"라고 말합니다. 즉, 번뇌와 보리(깨달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데, "번뇌즉보리"라는 말은 번뇌의 본질이 깨달음이니, 번뇌를 떠나서 깨달음이 없다는 뜻입니다(세상은 번뇌로 가득찼는데, 이 번뇌가 없다면 깨달음도 없다). 보살은, 번뇌를 이용하여 자비심과 인욕의 공덕(수행)을 닦아, 깨달음(부처)에 이른다. 이 두 모양의 본질을 법계일상 (깨달음과 번뇌는 같은 모습)이요, 중도 이며, 불이법문 이고, 법성원융무이상 이라 표현합니다.→더 나아가, 깨닫고 난후에는, 번뇌는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불성/법성,우주의 본래적 법, 비로자나만 존재하였다

 

모든 번뇌를 없애려면, "나"라는 번뇌(상)마져 없애야 한다. 근데, 내적,외적 모든 인식의 대상인 번뇌(상)가 소멸하였음에도, 모든 번뇌(상)가 소멸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체가, 마음의 번뇌(상)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번뇌(상) 즉, "자아"("사물")가 존재한다고 할수도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수도 없다. 이제 번뇌(상)의 존재 여부에 대한 생각조차(존재여부를 생각하는 그 자체가, 바로 "주관"이라는 또 다른 "번뇌"이므로)도 초월하여(분별심을 버리고), 모든 사유와 느껴진 것을 멸하게 된다.

 

그리고, 나("자아")를 포함한 일체의 모든 존재는 업과 번뇌로서, 다만, 인연따라 존재하였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 인연따라 존재하게된 "자아"("사물")이므로, 그 "자아"("사물")는 본래부터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음도 깨닫게 된다(제법무아, 제행무상).(하지만, 번뇌없는 본질적 모습인 불성(법성)은, 연기적으로 존재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자아와는 달리, 언제나 진리의 모습으로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한다. 즉, 번뇌없는 자신의 불성(법성)은 우주의 본래적 모습인 비상, 비비상의 모습으로 언제나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한다→ 불성(법성)즉, 부처의 모습)

 

→ 물은 물이요 와 같이, 있는 그대로가 진리이므로( 법계일상 ), 이를 깨달은자(아라한)는 부처를 이루는 마지막 단계인, 중생에게 복덕을 주고 교화하려 길을 나선다(예, 관세음보살등 일체 여러 보살님들의 보살행).

 

공사상 (중관사상, 중도사상)~ 공사상 (""이란, 보이는 모든 존재는, 모두 허상이고 망상이라는 뜻의 "공"이 아니라모든 존재는, "비유비무"형태로, 실제로 존재(실재)하지만, 그 실재하는 존재는, 항상 변화하는 "인과"로서 이루어진 존재라는 의미로서의 공 이다. 즉,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허상이고, 망상이라는 의미의 "공"이 아니다/ 또한, 만약에 인과가 없었다면, 모든 존재의 "상"과 "모습"도 실재하지 않게 된다는다는 뜻의 허상이라는 의미의 공 이다).

 

자성, 법성~ “자성”은 아무런 인과없이,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고, “법성(진여)”는, 우주일체의 본성으로, "비유비무"의 모습으로, 여여하게 존재하는 "진여"이며, 자신의 “근본적 본성”을 "법성" 또는 "불성"이라 말함 → 본래적 성품(불성, 부처). 이러한, “진여”를 포함한 모든 것의 본질적 “존재형식”은, “비유비무”, 비상비비상”의 모습이므로, 이것을 “공”이라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질은, 아무런 인과없이, 스스로 홀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자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즉, 모든 존재는, "비유비무"의 형태로, 연기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그자체는 고유한 자성 (인과없이,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으므로, 공 이라고 합니다(인과가 없었다면, "허상"이라는 의미에서 "공"이라 말함). 그러므로, 이 "공"을 "유"나 "무"의 극단이 없는 중도라는 것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것이, 깨달음에 다가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즉, 세계의 모든 존재는 스스로 홀로 존재할수 있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공"한 것이며, 이러한 "공"은 결코 "무"가 아니며, 다만 자성이 없어 조건적으로 생기하여 현상세계에 존재하게 된 것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과 영혼을 포함한, “모든 존재하는 것”은, “항상 변화하는 조건적인 “인과”에 의존하여 존재하므로,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진여”에 대비하여, “허상’이라 말할 뿐입니다. “진여”를 포함한 모든 것의 “존재형식은, “비유비무”, 비상비비상”이므로, 이것을 “”이라 표현합니다. “공”은 일체 모든 것의 존재형식을 말합니다[①인과”에 의해, “항상 변화하는 존재”를변화하지 않는 “진여”에 대비하여 “허상이라 말하며, ②“인과”에 의해,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에 대비하여, 일체 모든 것이, 비유비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모습을, “”이라 지칭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 결코, “”가 아닙니다].

 

따라서 "공"이란 비유비무 이며, 중도 이고, 모든 존재가 서로 조건적,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스스로 홀로 존재할수 있는 자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이 모든 존재가 자성이 없음에도, 겉모습은 스스로 홀로 존재하고 그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에, 이 세상은 진공묘유의 세계 (진실은 공하지만, 묘하게 존재되고 있는 세계)라는 겁니다.( 아래 블로그 카타고리 글증의 저승의 모습 블로그에 있어서, 해탈의 8순서 참조) 이러한 세상의 본질적 실제의 모습인 "공"을 깨닫지 못하는 중생은, 현실에서 통용되는 언어와 겉 모습만을 보고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자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고정된 본질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식사상과 공사상 ~유식 과 공 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세상 삼라만상의 본질에 대하여, 유식은 중생심(유위법)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고, "공"사상은 여래심(무위법)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결국, 같은 내용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일 뿐입니다. 또한, 유위법과 무위법에서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삼라만상의 본질에 대하여 설명하지만, ""이 있다 또는 ""이 없다라는 양극단을 말하는것이 아니고, ""은 "있는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 비유비무이며, 비상,비비상이라는 뜻의 ""의 성질은 ""이라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야경 내용에서~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설법하였던, 삼라만상의 본질인 ""은, 무노사, 역무노사진(늙고,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다), 무고집멸도(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다), 무지, 역무득(지혜와 지혜를 얻음도 없다)하다.

 

이와같이 오온(물질의 유기적 조합체) 또한 그 본질이 "공"(비유비무)하므로,오온에만 의지하여서는, 결코 아무것도 이룰수 없다. 이렇게 삼라만상의 본질은,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므로 비유비무 이고, 비상 비비상 으로의 "공"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부처는 반야(지혜)로서, 원리전도몽상하지 않고, 인연으로 존재하는 그대로가 진리임을 깨닫고, 견성후, 번뇌를 하나하나 제거하여, (과거,현재,미래)삼세의 모든 부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 ~ 이것보다 더 위가 없는 "큰 진리"인 무상정등정각 의 경지.

 

지혜(반야)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 본질이 "비유비무"(공)의 모습인데, 인연 연기로 인해 존재하는 것으로(인연연기의 집합체, 번뇌의 집합체, 유위의 집합체), 모든 인연 연기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 (자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모습) 그대로가, 바로 세상 존재의 진리임을 아는 궁극적인 혜안을 말합니다.

 

반야심경에서의 부처님 말씀은, 자신의 본체인 불성(여래심)은 언제나 변함없이 존재하는데, 이런 불성(법성)이 번뇌로 쌓여 있는 것이 중생심이며, 이런 번뇌에 쌓인 중생심으로 인하여,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말씀은 중생심으로 일어나는 번뇌가 허망하다는 뜻이지, 불성(법성)이 허망하다는 뜻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반야경의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 원리전도 몽상 은 오온으로 발생하는 번뇌가 허망하다는 뜻이지, 불성(법성)을 포함한 모든 것이 허망하다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것이 허망하고 망상이라면, 무엇이 윤회하는 지도 알수 없어, 윤회도 부정되고, 죽음뒤의 저승도 부정되며, 귀신도 부정되는 것이 됩니다. 윤회가 부정되면 이미 불교가 아님니다.

 

결국, 깨달음의 본질은 (보이는 것이, 망상이나 허상이 아니고)인연으로 존재하는 그대로가, 존재의 진리적 모습임을 인정하고, 오온의 본질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공한 모습의 불성이므로, 오온으로 일어나는 번뇌의 중생심(유위법)을 벗어나, 번뇌를 하나 하나 제거하여, 번뇌가 없는 비상, 비비상의 세계인 여래심(무위법)을 습득하라는 것이 그 내용이 입니다.

 

보살의 지혜 ~ 관자재보살은, 세상의 본질인, "비유비무"(공)을 비추어 보고, 모든 사유와 느껴진 것을 멸하여, (인과에 의해, 항상 변화하므로)고정된 자아가 없다는 "무아"(인과에 의해, 항상 변화하므로)고정된 상이 없다는 "무상"을 깨친 보살(아라한)은, 원하면 원하는 대로 선정에 들어가고, 나올수 있는 경지에 머물게 된다. →이렇게 깨닫고 익혀보니, 세상의 모든것은 인연연기에 의해 조작된 "유위"(인연과 번뇌가 있음)의 집합체임을 알게 된다.→ 너와나, 주관과 객관의 모든것은 인연연기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고, 세상의 인연연기로 존재하는, "무아"이든, "무상"이든, "허상"이든 "실상"이든, "이승"이든 "저승"이든간에,(인연에 의해, 존재하는) "들리고 보이는 모습" 그대로 바로 진리라는 지혜(반야)를 체득한다.

 

반야심경 내용에서, 오온은 그 본질이 ""(비유비무)하므로, (오온에 의지하면)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오온에 의지하여) "얻는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원리전도몽상 하지 않고(인연에 의해, 보이고, 들리는 모습 그대로가 진리라는) "반야(지혜)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아뇩다라샴막삼보리를 얻었느니라"~ * 오온~신체의 감각기관에 의해 발현되는, 색,수,상,행,식

 

 진여~ⓐ우주일체의 본성으로, 여여하게 존재하는 법성이며, 자신의 근본적 본성을 말함(비상비비상의 모습) → 본래적 성품(불성, 부처)/  저승세계(영,귀신,신)~ⓐ법성(비상비비상) + ⓑ번뇌로, 변화하는 인과에 의존("영안"으로 볼 수있는 존재/영계 수행번뇌제거) →사후세계=ⓐ+ⓑ / ③ 현생계 ~ⓐ법성(비상비비상) + ⓑ번뇌로, 변화하는 인과에 의존(영) + ⓒ오온(육신)으로 부터, 끊임없이 영향받고, 변화하는 존재 →현생계 = ⓐ+ⓑ+ⓒ (현생계 수행: ⓒ번, 오온으로 인한 영향 제거, 그리고 ⓑ번, 분별심 같은 번뇌제거 → ⓐ번, "진여"에 다가 감=최종 무색계에서 완성)

 

→ 이제, 깨침도, 깨쳤다는 법도, 깨쳤다는 사람도 없다는 경지에 이르러(완전한 깨침은, 깨침의 주체까지도 없다는 경지에 이르러), 세상의 모든 것은 (본질적인 면에서, 비유비무 형태로 존재하는)”공”이요, ("공"의 모습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중도”이며, (비유비무의 형태로 존재하는, 우주법계의 모든 것이, 그 본질면에서, 다르지 않으므로)”불이법문”이고, (인과에 의해, 항상 변화하며, 비유비무 형태로 존재하는, 우주법계의 성질은, 완전하게 융합되어 있어, 구별할 수 없으므로)”법성원융무이상”이며, (우주법계의 본질적인, 인과에 의해 항상 변화하며, 비유비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모습은, 우주법계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며, 일관된 한가지 모습이므로)”법계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나아가, 깨달은 아라한은 부처가 되는 마지막 단계인, 너와나 (인연연기로)한몸인, 모든 중생에게 복덕을 주기위해(자비심),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등 갖가지 보살의 이름으로 현신하여, 불가사의한 인연과 신통력, 지혜로서 중생에게 이롭고, 갖가지 고통과 환난을 구제하고, 복덕을 성취하게 하며, 여러가지 방편(각각 중생의 수준이나 근기에 맞는 방법)으로 중생을 정법으로 인도하고, 교화하기 위해 나서게 된다 → 무색계에서 최종 완성.(본 블로그 “신묘장구대다라니경 원문과 해석~” 블로그 중 “영험한 관음기도처”중, "동두천 소요산 자재암" 참조).

 

관자재보살~ 반야심경 처음에 나오는, 부처님이 예를 들어 말씀하시는, 반야심경의 주인공으로, 세상의 본질인, "비유비무"(공)을 비추어 보고, 자재무애의 경지에 이른 보살님. * 동두천 소요산 자재암~ 신라 무열왕1년(654년),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사찰. 원효스님이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행정진하고 있었는데, 어느 비오는 밤, 길을 잃었다며 비에 젖은 몸으로, 하루 밤 재워주기를 청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재워주게 되었다. 여인은 비를 맞은 몸을 떨며, 춥다며 몸을 주물러 달라고 유혹하였다. "일체유심조"의 경지에 이른 스님은 마음을 다스리고, "나를 유혹을 하여 무엇을 얻으려 하느냐"며 여인에게 물었다. 여인은 "그대 마음이 그렇게 볼 뿐이다"답하고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문득 스님은, 깨달음은, 자타를 구별하며, 유혹이라 생각하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한다는 "자재무애"의 경지를 알게 되었다 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있는 자재무애의 경지"를 일러 준, 그 여인이 바로 "관세음보살"화신 임을 뒤늦게 깨달은 스님은, 그 자리에 사찰을 짓고 "자재암"이라 하였다 한다.

 

자재암에는 원효스님이 수도하였다는 원효굴, 원효대, 나한굴이 있으며, 세조의 명으로 간행된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본"(보물1211호)가 대웅전에 비치되어 있다. 절 인근에는 요석공주가 설총을 키웠다는 요석궁지, 조선 태조가 자식들간의 왕권다툼으로 왕위를 물러나, 머물렀다는 행궁터(소요산 초입 우측의 넓은 터)가 있다. 가을 단풍관광지로 이름난 소요산일원은 19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본 블로그 "신묘장구대다라니경 원문과 해석" 또는 “불교사찰과 불교기도문~" 블로그 중 “관음 기도처” 참조).

 

화엄사상 (연기사상)~우주의 모든 사물과 존재는, 스스로 홀로 존재한다는 자성이 없고, 서로 인연이 있어 발생하고 소멸하며, 이러한 인연으로 인한 발생과 소멸은, 우주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서로 원인이 되기도하고, 하나로 융합되기도 한다는 우주관을 말함(대광광불화엄경).

 

화엄세계~ ① 기세간(유기적 물질세간), ② 중생세간(번뇌로, 윤회되는 세간), ③ 지정각세간(번뇌가 소멸되어, 윤회되지 않는, 지혜 세간)이라는, 3세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하여,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일심법계”, “화엄세계”라 한다. 번뇌가 소멸된 부처의 눈에는, 각 중생마다 달리 보일 수도 있는, 유기적 물질세계인 기세간, 윤회되는 (영계를 포함한)중생세간은, 전부 '업'과 '인과'의 총체적 모습이다.

 

* 화엄세계~ 해인사 이름의 유래인, “해인”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바다에 비유하고(), 바다의 거친 파도처럼, 끝없이 파도치는, 번뇌망상이 멈출 때, 비로소, 한없이 깊은 바다 속이, 훤히 비춰 보이는, 경지()”를 “해인”이라 말한다. 즉, 번뇌망상이 멈춘, 여실한 세계가 “진여”의 모습이며, 이러한 고요한 “진여”상태에 들어간 것을 “해인삼매”에 들었다고 말한다. 해인삼매에 들어, 어리석음의 바람과 번뇌의 물결이 잠잠해지면, 참 지혜의바다()에는, 흡사 도장을 찍듯이(), 일체의 모든 것이, 본래의 참모습으로 현현하게 된다. 이렇게, 일체 번뇌가 끊어진 가운데, 나타나는 삼매(三昧)는, 과거. 현재. 미래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있는, 모든 법이 마음속에 확연하게 나타나므로 해인정(海印定)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것이 부처의 경지이고,  해인삼매(海印三昧)이다(일체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 자리는, 무색계에서 완성된다고 한다).

 

이렇게, 온갖 번뇌의 물결이 깨끗이 사라진, 진실된 해인삼매의 눈참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가, 일심법계이고, 화엄세계이다. 일심법계, 화엄세계는 물질적 유기세계(기세간)사후세계를 포함한 중생들 세계(중생세간)참 지혜의 세계(지정각세간)와,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 모든 법이, 마치 흡사 도장을 찍듯이(), “있는 그대로 다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일심법계”, “화엄세계”는,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이며, 객관적 사실의 세계이고,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이것이, 부처님이 이룬 경지이고, 우리들의 참된 근본이며,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본래 모습이라고 한다. 

 

* 화엄경 ~ 세상에는 무수하게 많은 주장과 인생관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인생관과 주장의, 궁극적 목적은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를 추구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본질적 진리를, 각자 어떤 과정을 거치든, 스스로 찾아 내고, 그 진리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의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는(인도 남쪽을 돌았다고 하여, “남순동자”라고 불린다), 진리를 찾아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구도의 길에 나서게 되는데, 명백한 과오가 있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진리를 찾는 과정에 있는, 모든 주장을, 비판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모든 방법과 주장으로, 배우고 익히더라도, 결국, 스스로 알게 되고, 모든 주장과 방법들이, 누구라도 차별없이, 궁극적 진리인, “법진리” 하나로 모아지면서, 일승으로 회귀하여, 무지와 깨달음, 부처와 중생이, 모두 하나임을 알게 되고, 본래 “하나”라는 마음에서 생기는 일심이, "대승"의 보리심이고, 하나라는, 일심의 마음이, 바로 “일심법계”이고, “화엄세계”이며, 그것이 자신의 “본래 마음”이며, “부처의 본심” 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효스님이 말씀하신, “대승불교”의, “화쟁사상”이며, “일승사상”이고, “화엄사상”이며, “법화사상”입니다.

 

* 모든 존재의 본래적 모습“비유비무”(공) 의 모습.(저승세계와 귀신을 볼 수 없는 이유 -색즉시공, 비유비무)  (석가 말씀) 영혼은 물질인가, 물질이 아닌가? 물질도 아닌것이 존재하므로, 공도 아니다. 즉, 물질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합니다. 즉, 모든 물질의 본질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석가말씀)

 

② (현대물리학) 불확정성의 원리~ⓐ현실적 거시세계 = 위치o+질량o = 물질 측정이 가능. ⓑ물질의 본질인, 미시세계는 = 위치o+질량x 또는 위치x+질량o= 측정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물질이라 말할 수도 없다(위치를 측정하면, 그 질량을 알 수 없고, 질량을 측정하면,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불확정성의 원리 공식에 의하면, “위치x운동량”이라 되어 있지만, 운동량은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측정이다. 운동량= 질량x속도. 그런데, 보통 말하는 물질 개념은, 움직이던, 움직이지 않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그 위치+질량이 특정되고, 위치와 질량이 있는 것을, "물질"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불확정성 원리 공식의 운동량 중에서, 속도를 빼면, 질량만 남는다. 즉, 물질은 “위치+질량”이다. 이것이 동시에 측정되어야 “물질”이라 부른다.

 

즉, 미시세계에서는, 물질이라 규정할 수도 없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개념과 일치. 즉, 석가와 하이젠베르크의 물질의 본질에 대한 말씀이 동일함. 이것으로 “하이젠베르크”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음. 즉, 현대물리학에서는, “관측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 색즉시공 = 비유비무 = 공 = 제행무상 = 양자역학 → 모든 존재는, 영속적 실체가 없으며, [① (불교) 인과,연기~ ② (양자역학) 관찰자~]와의, “상호작용”하는 “관계만 있을 뿐이다(양자역학에 의한,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논리)

 

 “눈”이라는 "물질"을 통하여, “비유비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영혼”(귀신)이나, “물질의 본질”을 볼 수는 없다. 영혼의 눈, 즉, “영안”이나, “열반"을 통하여, 저승세계, 귀신들 세계, 화엄세계를 볼 수 있다. 즉, “눈”이라는 “물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저승세계이며, 귀신들 세계이다. 나아가, “영혼”의 눈에서,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진여”의 눈으로 보는 세계가, 일심법계이며, “화엄세계”이다.

 

그러므로, 온갖 번뇌의 물결이 깨끗이 사라지고, (반야심경의 “조견오온 개공도” → “오온”이 “공”하다는, “비유비무”의 세계를 비추어 볼 수 있는)진실된, “해인삼매”의 눈, “참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가, 일심법계이고, 화엄세계이며, 부처의 세계이다. (ⓐ욕계~욕망으로 가득찬 이승과 저승세계. 욕망을 가지고 있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색계~욕망은 버렸지만,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무색계~”색”을 버리고, ”비유비무”를 체험하기 시작하는 “신”과 “천인”들 세계).

 

* 중생의 지식 수준과 이해도에 따른 분류는 왜 있나요?~ 초등학생이 곱셈 나눗셈을 배우면, 곱셈, 나눗셈이 전부인 줄을 알게 됩니다. 그 초등학생은, 그 뒤에, 곱셈, 나눗셈 기반의 인수분해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초등생에게 아무리 인수분해를 설명해도 알아 듣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깊은 지혜는 어느 정도의 지식 수준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무아"는 인과에 의해, 변동하는데, 번뇌가 없어지면, “무아”는, 소멸한다. 단지 이렇게 이해한 초등생은, 번뇌가 없어져도, “무아”는,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무아”가 변동되어, “자아”의 기반으로, 비로소, “진여”가 보이게 된다는 것을 모름니다.

 

소승처럼, 번뇌의 소멸로, “무아”도 소멸된다면, 무엇이 존재하여 부처를 이루나요?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음에도, 소승은, 오직, “무아”(번뇌)의 소멸을 목적으로 하면서, 대승경전의 비불설을 주장하고, “대승”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승”을 넘어선, “대승”은, 번뇌가 소멸된, “자아”를 기반으로 현현되는, “진여”를 바탕으로, ① “무아”와 “진여”, ②무지와 깨달음, ③부처와 중생이, 본래 “하나”라는 마음에서 생기는, 이런 본래 ”하나”라는 “진여”의 마음이, 바로, “대승의 보리심”이며, “부처의 본심”이라는 것입니다. 즉 소승의 “무아”를 기반으로, “무아”와 “진여”가 본래 “하나”였다는 지혜로서, 소승에서 더욱, 발전된 불교가, 대승불교 입니다.

 

이런 부분이 바로, 지식 수준차이 입니다. 누구든 처음에 모두 다를 알 수는 없고, 어떤 방법으로든, 배우고 익히면서 스스로 알게 되면, 일승으로 회귀하여, 무지와 깨달음, 부처와 중생이, 모두 하나임을 알게 되고, 본래 “하나”라는 마음에서 생기는 일심이, "대승"의 보리심이고, 하나라는, 일심의 마음이, 바로 “일심법계”이고, “화엄세계”이며, 그것이 자신의 “본래 마음”이며, “부처의 본심” 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생의 수준 차이를 9가지로 분류하여, 각기, 중생의 근기 수준에 따른 설법을 하였습니다. 이런 분류는, 중생을 각 단계에 알맞게 설법해야 모두 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불교사찰과 불교기도문" 블로그, 부처님 수인, “아미타 구품정인” 부분 참조).

 

수월관음도~ “수월”이라는 이름은, 관음보살이 선재동자에게, 가르침을 베푼 곳이, “달이 비치는 물가”이기 때문에 유래한 이름이다. 법화경(관음보 살보문품)과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는 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구도여행”을 하게 된다. 보살, 스님, 비구니, 인도 바라문교의 바라문, 뱃사공등 53인의 여러 선지식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선재동자가 이루려는, 깨달음 과정의 안내자였다. 선재동자는 28번째로, 관음보살을 만나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보현보살(원을 세워 이를 행하는, 실천적 보살)을 만나, 결국 깨달음을 얻어, 극락정토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남쪽으로 돌면서 내려갔다고 하여, “선재동자”를 “남순동자”라고도 불린다(관음전의 후불 탱화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수월관음도”는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다. 대개, 그림에서, 관음보살은, “반가부좌”로, 금강대좌위에, 늠름하게 앉아 있고, 산호와 연꽃이 피어난, 물가에서,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올려다 보는 모습이며, 관음보살 오른쪽 바위에는, 흰 유리그릇 받침대가 있는 “정병”에, 버드나무가 꽂혀있고, 관음보살 등뒤에는, 푸른 대나무가 두줄기 뻗어 올라간 모습이, 대개의 수월관음도 모습이다. 그러므로, 수월관음 = 해수관음

 

용(용왕) 의미~ “용”이 상상의 동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상상의 동물이지만, “용”은, 물에 사는 신령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냥 “물신”이라고 부르면, 어감과 신령함이 부족하므로, 물과 관련된 신령한 존재를 의미하는 말로서, “용” 또는 “용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다 사람들도, 정말 용이 있다고 믿으며, 용신재를 지내는 것이 아니고, 바다와 관련된 신령한 존재에게, 안녕을 기원하며 재를 지내는 것입니다. 불교 “해수관음” 즉, 달빛이 비치는 물가에서 설법을 하는, “수월관음”도, 물과 관련한 신령한 보살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해수관음을 용이라 표현되기도 합니다. 관음전의 “후불 탱화”에, 바다의 관음보살로서 “용왕’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화사상 (일승사상/ 부처님의 진실한 뜻, 자비심과 보살행)~ 부처가 이세상에 출현한 큰 뜻은, 누구라도 큰 뜻을 실천하면, (일승으로 귀결되어)차별없이 부처가 될수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법화경은 석가의 45년 설법 내용을 마무리하는 경전으로, 석가의 출현은 차별없는 일승으로의 귀결을, 스스로 알리고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라는 내용의 경전이다. 그래서 법화경(묘법연화경)은 모든 경전의 집대성이며, 완성된 경전이라 말한다.

 

법화경(일승사상)~ 석가의 입멸 100년후(BC5세기인, BC450여년경)부터, 불교는, 교리해석에 따른 의견차이로, 여러 교파가 갈라지게 되었다. 특히 BC400년경부터~BC200년경 사이에는 크게 11개의 "상좌부"와 9개의 "대중부"등 20여개의 교파로 갈라졌는데, 이 시기를 부파불교(상좌부 불교)라 한다. BC2세기말 경에, 불교가 교단중심의 상좌부 불교로 흐르는 것에, 반발한 대중들은, 초기 불교의 석가 가르침의 근본인, 대중과 함께 한다는 자비심과 보살행 중심의 초기불교로의 복귀해야 한다는 여망으로 대승불교가 탄생하였다.

 

BC2세기말에 일어난 대중중심의 3차결집으로, 대중부의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등 대승경전이 "산스크리트어"로 완성되었다. 화엄경, 반야경, 법화경의 대승경전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진제의 “부집이론소”에서, “대중부”에 반야경, 법화경 등이 있다는 기록이 있고, 특히 상좌부계의 “법장부”교리는 대승불교와 많이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법화경의 기원이, 대승불교 초기로 올라 가고, “대중부”와 사상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부는, 대승불교가, “대중부”와 사상적 관련이 있음을 도외시하고, 법화경이 “최상승” 근기를 위해, 제일 나중에 설해졌다는 의견을 말하며, B.C 1세기~A.D 40년 무렵에, 그 원형이 나왔고, 그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보충되고, 개정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법화경을, 산스크리트어로,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라 하는데, 번역하면, '”올바른 법을 가르치는, 흰 연꽃 같은,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법화경을 한문으로, 번역할 때, “열반으로 가는, 오묘한, 연꽃 같은 경전”이라 해석하여, “묘법연화경”이라 이름 붙였다. 이를 줄여서, “법화경”이라 한다. 법화경은 화엄경과 함께, 동아시아의 대승 불교사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유통되어, 원효의 “법화경 종요”, 일본 쇼토쿠 태자의 “법화 의소”가, 대표적인 법화경 주석서로 존재하고 있다. 법화경과 관련된 경전으로, “무량의경”, “관세음보살보문품”(관음경), “관보현보살행법경”(법화경의 결론에 해당하는 경전)이 있다.

 

석가여래는, 열반에 들기 얼마 전, 영산회상에서 열린 법회에서, 자신이, 45년동안, 설법한 “아함부”의 가르침이, 사실 “방편”이었다고 말하면서, 석가여래는, 무한한 시간 이전에, 이미 성불한, 부처임을 밝힌다. 그리고, 성불하기 위해서는 성문승, 연각승(벽지불)은 방편이고, “삼승”중에서, 오직, “보살승”으로만, 성불이 가능하다고 밝혔다(일승). 즉, “사성제”와 “12연기”의 수행만으로, 열반에 이르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석가여래는 본격적으로, 보살”의 존재를 말하면서, 일승으로의, 대승 설법을 시작한다.

 

법화경 “여래 수량품”에서, 석가는 수억겁 이전에 이미 성불을 이루었는데, 중생을 위한, “화신" 보살로서, 이 땅에 오셨다고 밝혔다. 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부처의 “대자대비심”을 말해 주는 것이다. 보살로 오셨다는 뜻은, 보살이, 사실상 “법진리”로 이끌 수 할 수 있는 확실한 존재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모든 보살은, 중생들이 부처의 지견을 깨달아, “일승”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중생들에게 방편으로 열반의 경지를 보여 주며, 이 세간에 출현한다고 선언했다. 즉, 부처를 이루는 마지막 단계가 보살행이므로,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등, 모든 여래는 끝없는 보살행을 하여, 부처를 이루었고, 그런 보살이 진정한 “일승불” 임을 알린다. “일승불”로, 반드시 들어와야 이룰 수 있다는, 법화경의 가르침 말씀은, 곧 “소승”에서 멈추지 말고, “대승”의, 진짜 “법진리”로 들어오라는 뜻이다(소승의 “무아”에서 멈추지 말고, “자아”기반의 “비유비무”를 비추어 보며, 보살행을 행하는, “대승’이 진짜 “법진리”로 가는길 임을 밝혔다).

즉, 모든 보살은,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중생들이 있는 그 사바세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대비심의 보살행의 실천). 아미타불, 약사불은, 먼 과거세에 “대원”을 세우고,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므로서, 부처가 되었다. 그러므로, 원을 세운 불자라면, “대승법”의 "보살행"을 실천하라는 내용이 “법화경”이다(이런 석가불의 “법화경 설법”을, “영안”으로만 볼 수 있는, “비유비무” 세계에서, 증명하고, 보증하신 부처가, “다보”부처이다. 불국사는 이런 "비유비무"세계에서 이루어진 "다보불"의 증명을 형상화하여,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웠다).

 

그래서, 법화경 “관음보살보문품”에, 부처의 분신인, 관음보살의 이름을 염불하라는 내용이 있고, “보현보살권발품”에, "보현보살"이 보현행원을 행하는 이들을 "직접 수호하겠다"고 말하는 내용도 있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성문승”, “연각승”의 “소승”으로는, 사실상 법진리로 가는 길이 아님을 밝혔고, “소승불교”에 없는, 보살의 존재 근거와, "삼승"중에서, 일승불의 “보살승”만이 진정한, “법진리”로 가는 길임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법화경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를 구분하는, 중요한 경전된다.

 

그러므로, 불교는 자력 신앙이지만, 타력신앙처럼, 여러 보살이, 간절히 원하는, 중생에게 도움을 주고,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여러 보살님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즉, 부처의 분신인, “여러 보살님의 도움을 받아” 일승의 보살도를 행하고, 중생구제에 힘쓰면, 법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불의 협시보살인, 관음보살, 지장보살 또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인,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또는 관음보살, 지장보살. 미륵불의 협시보살인, 묘량보살(대묘상보살), 법륜보살(법화림보살). 약사불의 협시보살인 일광보살, 월광보살 등의, 보살이 대승불교 전각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블로그 "불교 사찰과 불교 기도문"의 후반부 "부처와 보살 모습")

 

만다라~ 부처님 깨달음의 세계를 5방위의 그림으로 나타낸것(깨달음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것을 "화엄일승법계"라 말한다)금강계 만다라(금강정경을 중심)와 태장계 만다라(대일경을 중심)가 있다.   

   

          대일여래- 법계체 성지(있는 그대로, 본래적 법성, 불성을, 체험하는 경지)-중앙- 비로자나불

          아촉불- 대원경지(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청정의 경지)- 동방- 약사여래

          보생불- 평등 성지(자타의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을 일으키는 경지)-남방-미륵불

         무량수불-묘관찰지(일체 현상을 관찰하여, 자유자재로 가르치고, 중생 의구심을 끊는 경지)-서방- 아미타불

          불공성취불- 성소작지(중생구제를 위해, 해야할 것을 모두 성취하는 경지)-북방- 석가여래

 

사방불 ~ 풍수사상과 결합하여,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사방불이 조성되었다.초기에는 중앙 비로자나불, 동방 관세음보살, 서방 아미타불, 남방 지장보살, 북방 석가불이 조성되었고, 8세기 이후에는, 중앙 비로자나불, 동방 약사불, 서방 아미타불, 남방 미륵불, 북방 석가불로 변천되었다. 미륵불과 석가불은, 북방 또는 남방으로, 그 방위가 바뀌어 혼용되어 조성되기도 하였다.

 

삼계불 동방 약사불, 중앙 석가불, 서방 아미타불의 삼계불을 모신전각을 "대웅보전" 이라 하고, 석가 부처님과 보살을 모신전각을 "대웅전" 이라 한다. /욕계, 색계, 무색계의 그 삼계가 아님). 타방불방위별 다른세계의 부처님을 말함

 

우리은하 일부

 

불경 ~ 5천여권의 경전은 크게 분류하여,아함경 방등경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 등이있고, 이에 더하여, 율장 그리고 논장이 있음. 아함경에는 장아함경 중아함경 잡아함경 증일아함경 이 있다. 또한, 반야경 중에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 금강반야바라밀다경 (줄여서, 금강경)이다. 대장경은 부처님 가르침인 “경장”, 계율인 “율장”, 연구 해석서인 “논장”을 “삼장”이라 하고, 이런 “삼장”의 모든 서적과 주석서를, 통털어 집대성한 것을 “대장경”이라 함.

 

한편, 5장,70경,1149수의 시로 구성된, 구도자의 물음에 답하는, 지혜로운 부처님 말씀을 모은책으로, 초기 불교경전인 숫타니파타 가 있고, 질문자 없이 부처님 스스로 설법하여 전해지는 초기 불교의 계송 중에서, 실생활과 밀접하고 인생의 지침이 될만한 좋은 게송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엮은, 2권 39품 758개의 간결한 게송들로 구성된, 부처님의 경지와 지혜를 엿볼수 있는, 초기 불교 경전으로 법구경 이 있다. 

 

불교의 발전과 경전 ~

① 부처님 계실때, 최초로 결집된, 구도자의 물음에 답하는 형식의, 지혜로운 부처님 말씀을 모은 경전이 "슈타니파타"

② 석가 입멸 직후인, BC544년에 2차로 결집된 경전이 "아함경"(남방불교에서는 이를 "니까야"라 부름) → 인도는 방대하여,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고, 부처님은 주요활동 지역인 마가다국을 중심으로한, 평민언어인, "마가디어"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아함경에 속하는 경전은 2천여권에 달하는 데, 암송으로 전해지다가, BC5세기~BC4세기경 사이에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로 옮겨짐.

 

③ 석가의 입멸 100년후(BC5세기인, BC450여년경)부터, 교리해석에 따른 의견차이로, 여러 교파가 갈라졌는데, 특히 BC400년경부터~BC200년경 사이에는 크게 11개의 "상좌부"와 9개의 "대중부"등 20여개의 교파로 갈라졌는데, 이 시기를 부파불교라 한다. 이 부파불교는 출가자와 승원 중심의 방대하고 수많은 논서 중심의 학문불교였다고 한다.

 

④ 남방불교 상좌부불교 부파불교 소승불교 ~ 남방상좌부에 속하는 교파가 스리랑카,미얀마,태국,캄보디아등에 전해져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상좌부계의 법장부교리는 대승불교와 많이 일치한다고 한다. 남방불교는 출가를 전제로, 타인의 구제보다는 자기 수행의 완성에 우선적 목표를 두고 있다.

 

⑤ 북방불교 대승불교 ~BC2세기말 경에, 불교가 교단중심의 상좌부 불교로 흐르는 것에, 반발한 대중들은, 초기 불교의 석가 가르침의 근본인, 대중과 함께 한다는 자비심과 보살행 중심의 초기불교로의 복귀해야 한다는 여망으로 대승불교가 탄생함. 자신의 수행과 함께, 중생의 고통을 배려하는 자비심으로, "타인과 함께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행을 기본으로 한다.

 

→ BC2세기말에 일어난 대중중심의 3차결집으로, 대중부의 반야경, 법화경, 화엄경등 대승경전이 "산스크리트어"로 완성됨. → 인도의 "카니시카"왕 재위시(AD140~170년)에, 지금까지의 상좌부불교와 대중부의 대승불교등 모든 경전을 총정리하는, 4차 결집이 이루어짐. → 중국, 한국, 일본등에 전해짐.

 

불교의 전래 ~①고구려~소수림왕 2년(372년) 오호십육국의 하나인, 전진의 승려 “순도”가 최초로 불교를 전파하였고, 그 2년뒤 승려 “아도”가 진나라부터, 고구려에 왔다. 374년 아도는, “이블란사”와 성문사(초문사)를 창건하였지만, 현존 하지는 않는다. 현존하며, 고구려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은 “아도”가 381년에 창건한, 강화도 “전등사”이다 ②백제~침류왕 원년(384년) 진나라에서 온, 서역의 승려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함. 384년 인도승려 마라난타는 영광 “불갑사”와 나주 “불회사”를 창건하여, 백제에서가장 오래되고, 현존하는 사찰이 되었다.

 

③신라~눌지왕(411~457)시절, 육로를 통하여, 고구려 승려인 “묵호자”와, 고구려에서 온, 동진의 승려 “아도”가 불교를 전파하였지만, 공인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도”가, 눌지왕시절에 창건한, 구미 “도리사”는, 신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현존하는 사찰이 되었다. 현재, “도리사”에는 아도화상이 수행했다는, 좌선대가 있다. 그후, 신라는, 이차돈의 순교로, 순교 이듬해인, 527년(법흥왕14년)에 국교로 공인하였다.

 

④ 가야 ~고려시대에 쓴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해(금관)가야의 “김수로왕”(42년.3.16 ~ 199년.3.23. 향년 157세로 사망함)때, 인도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후, 김해 가야의 왕후가 된, “허왕후”와 그 오빠인 “장유화상”에 의해, 이미 해로를 통하여, 불교가 전래 되었다 한다(장유화상은, 김해시 “장유”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그러므로, 가야불교는 육로의 삼국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불교가 전해졌다. 그 시절에 지은, 밀양 “만어사는 김수로왕 당시에 창건했다고 한다. 또, 밀양 “부은사는 가야 2대왕인 “거등왕”이 아버지 수로왕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하동 “칠불사는, 김수로왕의 7왕자가, 외삼촌인 “장유화상”을 따라 스님이 되어, 2년만인, 103년8월 보름날, 모두 성불하였다는 것을 기념하여, “칠불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사찰이라고 한다 (영험한 문수보살기도처 참조)하동 “칠불사”에는, 통일신라시대 때 건축한, 불을 한번 때면 100일간, 그 온기가 지속된다는 "아자방"의 “신라식 온돌”이 유명하다(경남지방유형문화재 144호). 그러므로, 밀양 만어사, 밀양 부은사, 하동 칠불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그후, 김해(금관)가야는 532년에 멸망하였고, 나머지 여러 가야국들도 555~562년 사이에 멸망하여, 백제 또는 신라에 흡수되었다.

 

* 불교에서, 민족전통 종교인, "선교'를 수용~ 불교는, 기존 종교인, "선교'를 수용하여, "하나님", "나반존자", "산왕대신" 3분을, 사찰의 "삼신각"에 모시게 되었다. 민족종교, 선교를 수용하면서, "하나님"(칠성님)을, "칠성부처님"이라 호칭하며, 부처님 모습으로 모시게 되었다. 불교가 전래되자, "단군신화"에는, 단군을 "제석환인"이라 표기하였다. 즉, 하나님 아들인, 한웅과 단군 “왕검”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불교에서 “제석천왕”이므로, “단군신화”에는, 민족의 하나님인, 단군 “왕검”을 묘사할 때,. “제석환인”(제석하나님) 이라 표기하게 되었다.

 

* 사찰의 삼신각(선교)~ 가운데 - 칠성님(하느님, 칠성하느님, 칠성부처님), 좌측에 -신령님(나반존자, 독성님), 우측에-산신님(산왕대신님)을 모심. 삼신각에 계시는, (일곱분, 칠여래의 증명을 거친) 주불인, 한민족 “칠성님”(하느님)을,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북극성)라 한다. “칠성님”(치성광여래/하느님)은, 무병장수와 자손번창을 상징하므로, 불교에서는, “약사불”처럼,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그리고, “칠여래”가 증명하고, 호위를 하고 있는, 후불 탱화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신각 또는 칠성각에 모셔진, ​칠여래가 증명하는, 하나님, 즉, “치성광여래”는, 무병장수와 자손번창을 상징하며, 아픈 곳을 만져주는, 약사여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북극성 하나님의 거처는, 칠성궁이므로, 칠성님이라 부른다. 후불탱화로, 치성광여래(북극성, 하나님)+칠여래+약사역활의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의 “십존불”을 그리기도 한다)

 

성경에는, 창조에 대하여, "땅과 바다"를 창조하고, 식물들을 창조한 후, "나중에" 태양과 별을 창조했다 한다. → 성경에서, “야훼”신이, 기존의 지구에서 땅과 바다, 식물을 창조한 후, 태양과 별, 달을 창조했다고 하는 것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천동설"에 의한, 창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동설을 말하는 야훼는, 절대로 창조주가 될 수 없다. 이런 “야훼”를, 십계명 3조를 위반하며, 유일신이라며 숫자 “하나"로, 번역하여, 숫자 ‘하나’님이라 부른다. 카톨릭에서도, 숫자 ‘하나’의 표준말이라며, 숫자 ‘하느’님이라, 부른다. 이런 행위는, 한민족 하나님과 “착각을 유도”하기 위한, “속임수”에 해당하는 사기이다. (“빅벵설”의 모순으로, “창조설”이 진리가 된다는 것은, 속임수이다)

 

기독교를 한국에 전도하면서, ​"이름"은 고유명사로서, 번역할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계명 3조를 위반"하면서, "야훼(여호와)"라는 고유명사를, 숫자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에 대하여, 언드우드등 서양의 선교사들은 반대하였지만, 그 종교의 전도 편의를 위해, 한민족의 하나님과 “착각을 유도”하기 위해, 유일신이라며, 숫자 “하나”, 즉, 숫자 “하나님”으로, 이름을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서, “야훼” 또는 “여호와”의 이름을, 십계명3조를 위반하며, 숫자 “하나”로 번역하여, 숫자 “하나님”으로 부르면,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은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원본 불경의 언어 ~ 인도는 방대하여,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고, 부처님은 주요활동 지역인 마가다국을 중심으로한, 평민언어인, "마가디어"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아함경에 속하는 경전은 2천여권에 달하는 데, 암송으로 전해지다가, BC5세기~BC4세기경 사이에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로 옮겨졌다. 남방불교의 원전은 대부분 "팔리어"로 쓰여졌고, 북방불교의 원전은 대부분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졌음. ①팔리어(성전어)~인도 아리안 계통의 언어로, 인도서쪽지방의 일반 민중이 쓰던 언어. 스리랑카로 전해진 상좌부불교가 동남아시아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팔리어"는 성서러운 언어라는 뜻의 성전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됨.②산스크리트(범어)~인도 아리안 계통의 언어로, 상류층이 쓰던 고상한 언어. 대중부불교가 중국등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한자권에서는 경전의 "산스크리트어"를 상류층, 천상의 언어라는 의미로 "범어"라 번역함.

 

인도의 종교 ~

ⓐ브라만교(바라문교/베다교)~고대의 경전인 "베다"를 근거로, 창조신 "브라흐마"를 믿는 종교. 업과 윤회에 의한 신분제도인 카스트제도에 의해, 브라만(바라문/사제),크샤트리아(귀족), 바이샤(평민), 수드라(노예)의 4가지 계급의 신분으로 구분(여기서, 인도 우주 창조신 "브라만"은, 천동설을 말하는, "지구중심적" 창조신 "야훼"(여호와)가 아닌, 범우주적 "범신"을 의미한다).

ⓑ힌두교(힌두는, 인더스강의 산스크리트어 "신두"(큰강)에서 유래)~석가 사후로부터 약 860년 뒤인, A.D320년경부터 시작된 굽타왕조에서, 기존 브라만교의 창조신 "브라흐마"에, "비슈누","시비"신을 추가하여, 삼신의 힌두교를 완성하고, 불교의 석가도 "비슈누"신의 화신일 뿐이라며, 불교의 석가를 힌두교의 "화신"으로 흡수하였다. (브라만교 → 불교 → 힌두교)

즉, 석가 사후 860년뒤, 굽타왕조에서, 고대 브라만(바라문)교에, 불교일부, 토속명상,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비슈뉴", "시바", 2신을 추가하면서, 힌두교가 성립함. 경전은 브라만교의 "베다"에 발전된"우파니사드"를 추가. (창조신)"브라흐마"+ (질서유지신)"비슈누"와 (파괴의 신)"시바"의 3신을 기반으로, 인간이 생각할수 있는 수많은 신을, 3신의 화신이라며 숭배하고 있다. 석가부처도 "비슈누"신의 화신이라 생각한다.

시크교~15세기 "나나크"가 창시함."사트카르타르"를 유일창조신으로 하고,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를 부정함. 업과 윤회를 인정하여 엄격한 불살생을 지키고, 채식주의를 철저히 실천함. 터빈을 쓰고 다니며, 수염을 기름. 신자는 인도북부 편잡지역에 주로 존재함.

힌두교와 불교의 다른 점 ~불교의 연기론, 사성제, 8정도와 같은 불교의 핵심교리는, 힌두교 경전인 "베다"(우파니샤드 포함)의 어디에도 찾을 수없는 불교만의 독특한 교리이다. 힌두교는 전생의 업에 따른 현생의 신분은 변할수 없고, 전생업에 따른 불평등한 신분질서에 충실해야 내생을 보장받는다고 함. 반면, 불교는 전생의 업이 있더라도, 현생의 행복은 마음에 따른, 각자가 행하기 나름이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임. 즉, 힌두교의 우파니사드에서도, 자연의 법칙인 업과 윤회를 인정하고 있지만, 이런 업과 윤회의 확실한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반면, 불교에서는 석가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인, 사성제로서, 업과 윤회의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등이, 힌두교와 불교는 전혀 내용이 다른 종교.

 

(인도 종교의 변천 요약 ~ ① 당초 인도에는, 우주 만물의 창조신 "브라만(범신)"을 믿는 "브라만교(바라문교,베다교)"가 있었음.(브라만은, 성경에서 천동설로 우주를 창조했다는, "가짜 창조신" 야훼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우주 창조신"으로서의 범신을 말함) 

 

→ ② 석가는 스스로 깨달음을 완성하고, 바라문교의 바라문들과 치열한 의견을  교환하며, 굴복시키고, "불교"라는 종교를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내 보이게 됨. 즉 "불교"시대가 열림 

 

→ ③ 석가 사후로부터 약 860년 뒤인, 서기 320년경, 인도 굽타왕조에서, 예전의 브라만교에, 전래 민간신앙, 전래 토속명상과 불교의 일부를 통합하여 추가하고, 창조신 "브라만"에 더하여, 질서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의 삼신을 기반으로 한 힌두교를 창설하였다. 그 후, 힌두교는, 8세기에 “샹카라”에 의해, 대승불교 사상인, “범아일여”를 받아들여, 창조신, “브라만”과 불멸의 자아인 “아트만”이, 하나가 되는 것을 해탈이라고 주장했다. 또, 11세기에 가서는, “라마누자”가 “신”에 대한 대중성을 주창하며, 지금처럼 수많은 신을 섬기는 힌두교가 되었다. → 즉, 불교가 힌두교를 표절한 것이 아니고, 사실은 힌두교가 불교의 일부 내용을 표절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임.)

 

인도 유일 창조신 “브라흐마”와 성경의 유일 창조신 “야훼(여호와)”에 대하여~

창조과학이라며, 태초에 "특정 창조주"가 전 우주를 창조하였고, 그 창조물이 어떻게 변하여, 어떻게 존재하여도, (암흑물질과 에너지가 소멸되는 블랙홀의 존재를 간과하면서)에너지불변의 법칙에 의하여그 모든 것은 특정 창조주의 창조물일 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면, 태초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태초의 에너지"를 창조했는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가? 아무런 인과없이 "무"에서 "유"의 "태초"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그 창조주는, 또 누가 창조했는가? 그 창조주를 창조한, 창조주는 또 누가 창조했나요? (무한하게 반복해야 하는 창조 논리)

 

설사, 그 창조주의 창조논리가 맞다고 해도, 지동설은 이미, 증명된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 태초의 창조주가, "지구를 창조"한 후, "태양과 별을 창조"한, 천동설로 우주를 창조했나요? 천동설을 말하는 얼간이 창조주가 무슨 재주로, “무”에서 “유”로, "태초 에너지"를 창조하나요? 이런 "가짜 창조주"을 증명한다며, (암흑물질과 에너지가 소멸되는 블랙홀의 존재를 간과하면서)고전 물리학의 "에너지 불변의 법칙"까지 동원하며, 창조설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론과 빅벵론은 별개입니다. 빅벵론은 "태초 우주형성 에너지"에 대하여, "빅벵"이라는 "에너지 대폭발"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는, 하나의 학설일 뿐입니다. 근거는 "우주팽창론"이라는 가설때문입니다. 이런 학설은 증거에 의하여 언제든지 변합니다. 그러므로, “빅벵설”에 “모순”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창조설”이 진리가 될 수는 없는데, “빅벵설에 모순이 있으니, 창조설이 진리다” 말하는 것은 속임수입니다).

 

석가는, 석가 당시에 존재하던 “브라만”교의 창조신,"범신"(브라흐마)에 대하여, 초기 경전인 “아함경”에서, (범신의 전생을 이미 알고 있기에)아무것도 없는 태초 “허공”에서인과없이 존재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창조”을 부정하고, "범신"이 아무런 인과없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부정한다. 그후, 석가의 열반 860여년이 흐른 후, 탄생한 “힌두교에서는, “브라만교”를 이어 받아, “유일창조신”의 “브라흐마”를 포함한, “질서유지신”의 “비슈누”, “파괴의 신”의 “시바”등, 3신을 믿고 있다(과학도 증명하지 못한, “무”에서 “유”의 “태초에너지”를, “창조신”은 “무”에서 “유”를 증명했나요? 아니지요? 인도 창조신 “브라흐마”와, 기독교 창조신 “야훼(여호와)"중, 과연 진짜가 있을까?)

 

* 태초 우주창조~

태초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무”에서 “유”의 우주창조에 대하여, ① “빅벵설” ② “창조설”의 2가지 설이 있다. “창조설”을, 더 분류하여, ⓐ지동설에 의한, 창조설과 ⓑ천동설에 의한 창조설이 있다.

 

① 빅벵설~ 과학자들의 주장인데, 관측에 의하면, 별들의 간격이 점점 넓어지고 있으므로, “우주팽창설”에 의하여, 태초 허공에, 엄청난 에너지의 물체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 엄청난 에너지의 폭발(빅벵)이 있었기에, 우주가 팽창되면서, 이때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설”이다(태초 허공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존재하게 된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 즉, “양자역학”에서, 양자와 중성자, 음자가, 어떤 충격에 의해 “원자”속에서 이루어 진다는, “양자역학”을, 우주에 적용하려면, “원자” 수십억조가, 태초 우주에 존재해야 하는데, 태초 “무”에서 “유”가 있게 된, "원자"존재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

 

* 불교~ 물질은 “비유비무”의 존재(저승세계와 귀신을 볼 수 없는 이유 -색즉시공, 비유비무) ㉮ (석가 말씀) 영혼은 물질인가, 물질이 아닌가? 물질도 아닌것이 존재하므로, 공도 아니다. 즉, 물질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합니다. 즉, 모든 물질의 본질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석가말씀).

 

㉯ (현대물리학) 불확정성의 원리~ⓐ현실적 거시세계 = 위치o+질량o = 물질 측정이 가능. ⓑ물질의 본질인, 미시세계는 = 위치o+질량x 또는 위치x+질량o= 측정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물질이라 말할 수도 없다(위치를 측정하면, 그 질량을 알 수 없고, 질량을 측정하면,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불확정성의 원리 공식에 의하면, “위치x운동량”이라 되어 있지만, 운동량은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측정이다. 운동량= 질량x속도. 그런데, 보통 말하는 물질 개념은, 움직이던, 움직이지 않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그 위치+질량이 특정되고, 위치와 질량이 있는 것을, "물질"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불확정성 원리 공식의 운동량 중에서, 속도를 빼면, 질량만 남는다. 즉, 물질은 “위치+질량”이다. 이것이 동시에 측정되어야 “물질”이라 부른다.

 

즉, 미시세계에서는, 물질이라 규정할 수도 없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개념과 일치. 즉, 석가와 하이젠베르크의 물질의 본질에 대한 말씀이 동일함. 이것으로 “하이젠베르크”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음. 즉, 현대물리학에서는, “관측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 색즉시공 = 비유비무 = 공 = 제행무상 = 양자역학 → 모든 존재는, 영속적 실체가 없으며, [① (불교) 인과,연기~ ② (양자역학) 관찰자~]와의, “상호작용”하는 “관계만 있을 뿐이다(양자역학에 의한,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논리)

 

㉰ “눈”이라는 "물질"을 통하여, “비유비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영혼”(귀신)이나, “물질의 본질”을 볼 수는 없다. 영혼의 눈, 즉, “영안”이나, “열반"을 통하여, 저승세계, 귀신들 세계, 화엄세계를 볼 수 있다. 즉, “눈”이라는 “물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저승세계이며, 귀신들 세계이다. 나아가, “영혼”의 눈에서,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진여”의 눈으로 보는 세계가, 일심법계이며, “화엄세계”이다.

 

그러므로, 온갖 번뇌의 물결이 깨끗이 사라지고, (반야심경의 “조견오온 개공도” → “오온”이 “공”하다는, “비유비무”의 세계를 비추어 볼 수 있는)진실된, “해인삼매”의 눈, “참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가, 일심법계이고, 화엄세계이며, 부처의 세계이다. (ⓐ욕계~욕망으로 가득찬 이승과 저승세계. 욕망을 가지고 있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색계~욕망은 버렸지만,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무색계~”색”을 버리고, ”비유비무”를 체험하기 시작하는 “신”과 “천인”들 세계).

 

② 창조설~ 특정 창조주가 존재하여, 우주를 창조했다는, 주로 종교계에서의 주장인데, 지동설에 의한 창조설, 천동설에 의한 창조설이 있다.

ⓐ(지동설에 의한 창조설, 인도의 브라만교와 힌두교의 창조주 “브라흐마”) 아무것도 없는, 태초 허공에, 창조주가 홀로 스스로 존재하고 있었고, 창조주가 “무”에서 “유”의 우주를 창조했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그 창조주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가 없고, 아무런 인과없이, 존재하게 된, 창조주가 무슨재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지를 도저히 설명하지 못한다.

 

ⓑ(천동설에 의한 창조설, 성경의 창조주 “야훼”) 성경에는, 태초 허공의 “무”에서 “유”로, "지구”를 어떤 방법으로, 창조"했다는 내용은 없고, 이미 존재하는 지구에, "땅과 바다"를 창조하고, 식물들을 창조한 후, "나중에" 태양과 별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 즉, 기존의 지구에서 식물을 창조한 후, 태양과 별, 달을 창조했다는 것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천동설"을, 설명하는 내용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천동설을 말하는 야훼는, 절대로 창조주가 될 수 없다, 이런 “야훼”를, 십계명 3조를 위반하며, 유일신이라며 숫자 “하나"로, 번역하여, 숫자 ‘하나’님이라 부른다. 카톨릭에서도, 숫자 ‘하나’의 표준말이라며, 숫자 ‘하느’님이라, 부른다. 이런 행위는, 한민족 하나님과 “착각을 유도”하기 위한, “속임수”에 해당하는 사기이다. (“빅벵설”의 모순으로, “창조설”이 진리가 된다는 것은, 속임수이다)

 

* 생명체에 대하여, 진화론과 창조설~ 현재 존재하게 된 생명체에 대하여 ① “진화론” ② “창조설의 2가지 설이 있다.

① “진화론”~ 과학자들의 주장인데,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다. 최초 원시 미생물에서 진화하여, 단세포로, 다시, 다세포로 진화되었는데, 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하여, 점점 변화되어, 현재의 생명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즉, "진화론"은 자연의 법칙인, "윤회"를 바탕으로 성립됩니다(만약,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라면, 무엇으로 생명체 후손 진화가 이루어지나요? 과학자들은 “​우연히” 유전자 DNA변이가, 발생하여, 적자생존 원리에 의해, 진화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천, 수만번의 “윤회”를 거듭하며, 아뢰아식에 새겨진, 적자생존 “욕망”이, 유전자 DNA변이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우연히”보다 합리적 아닐까?)

 

② “생명 창조설” ~ 슈메르 신화를 복제한, "성경"을 진리라 주장하는 자들은, 야훼신이, 땅위에서 두발을 딛고, "진흙"이라는,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재료 등을 가지고, "우리의 형상따라, "검은 머리"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므로, 이미 “완전하고, 완성된”, 인간을 포함한,모든 생명체”를 “완전하게”, 처음 창조했기에, 모든 생명체는, 야훼신 "피조물"일 뿐이라 주장한다. 그러므로, “야훼신”은 최초의 완전한 인간으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였고, 그 후손이 지금의 인류라고 주장한다.이런 “성경” 주장만을 믿고, 최초 원시 미생물에서, 현재의 생명체로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완전한 허구라 주장한다. ("우리의 형상따라" 의미는, "야훼"가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아담”이, 최초 인간이 아님을,뜻하는 것이다. 또 현재 의학계에서, 바이러스의 계속된 진화로 말미암아,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불가피한 현실은, 생명체에 있어서, “창조설”보다, “진화론”이 진리라는, 증거가 된다)

 

아담이 최초인류인가? ~최초 인류로서, (지구를 창조하지도 않고)지구에 존재하는 진흙을 이용하여, 야훼신과 닮은 모습인, “아담”(남자)을 흙으로 창조하고, ①“아담”의 갈비뼈로, 여자 “이브(하와)”를 창조하였다 한다(남자 갈비뼈가, 여자보다 적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②선악과를 따먹었다는 이유로, 에덴동산에서 좇겨나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다 한다(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2사람뿐인데, 농경생활은 불가능하다. 옷도 없이 벌거벗은 채로, 농기구도 없이, 수렵생활을 했다고 해야 맞음) ③​"가인"과 "아벨"이라는 두아들을 낳았는데,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다고 한다. 야훼신이, 살인자 "가인"을 해치는 사람은 7배의 벌을 주겠다 약속하였다 한다(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단 3사람뿐인데, “가인”을 해칠 사람도 없다. 그런데 누구에게 7배의 벌을 주겠다는 것인가? 거짓말이다). ④“가인” 아내를 맞이하여, "에녹"을 낳았다고 한다(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단 3사람뿐인데, 갑자기 아내는 어디서 나타났나? 이것도 거짓말이다).

 

→ 즉, 이것은, 다른 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성경은, "아담"이,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암암리"에 자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군의 자손"이, 슈메르 창조신화를 "복사"한, 성경의, 유대민족 자손이 될 수는 없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타력신앙(외적종교)~신이, 모든 인간의 생활사를 일일이 간섭하며,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신을 받듬으로서, 그 신으로 부터 뭔가를 받기를 추구하는 후진적 신앙. 이런 타력신앙은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한 출생이나 비참한 생활 즉, 인간 불공평한 출생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을 할수 없다.

 

자력신앙(내적종교)~불교가 대표적이며, 사람에게는 전생으로부터 또는 이승의 어떤 행위에서, 비롯된 각자의 업장이 있고, 그 업장이 각자의 행복을 막고 있는데, 중생을 도우겠다고 서원한 여러 보살님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받고, 또 스스로 공덕을 쌓고 업의 소멸을 통하여, 각자의 그 업장을 스스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한다. 더 나아가 깨달음을 통하여 남을 도울수있는 보살이 되거나, 부처까지도 이룰수 있다는 신앙

 

유교는 공자가 주장한, 현실적 정치 논리와 인간철학을 유교라하였는데, 동양에서는 불교는 정신적 문제를, 유교는 인간적 도리인 정치적, 현실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한편, "역" 즉, 역학을 주역이라고도 말하는데, 이는 주나라 때의 역학이라는 뜻으로 "주역" 또는 “역학”이라고 말함. 역학을 인간에 적용한 것을 “명리학”이라 말함.

 

그후, 중국 송대의 유학자인 "주자"가 유교의 13경중에서, 4서3경을 집대성하여, 이를 "주자학"이라고 말하며, 이 주자학에 중국 주나라에서부터의 오랜 우주철학인 동양역학인 "주역(역학)"을 유교에 포함시킴. 즉, 동양역학을 주역(역학)이라 말하고, 주자가 뽑은 유교의4서3경을 주자학이라 말합니다. 즉, 주역을 유교의 주자학에 포함한 것입니다 (역학 즉, 주역과 풍수지리에 대하여는 맨 아래 목록 "사주와 사주팔자 풍수지리, 역학과 운명에 대해" 블로그 참조)

 

이런 주자학을 이어받아 더 깊이 들어간 것이 성리학인데, 인간에게는 이기 즉, 이성과 정기가 있으므로 이기론이라 하며, 이 이기론에 있어서, 이기가 하나로 있다는 이기일원론과, 따로 있다는 이기이원론의 논쟁이 유명한 퇴계학 논쟁입니다. 

 

지식이 있어야 실천할 수 있다는 이러한 성리학에대하여, 유교의 경전중 대학과 논어만이 필요하며 그것을 실천하고 적용하는 것이 바로 지식이라는, 지행합일을 주장한 것이 양명학입니다. 이러한 양명학은 조선에서 적극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리학은 지식이 있어야 실천할 수 있다. 양명학은 실천하고 적용하는 것이 바로 지식이다) → 실학 사상으로 발전

 

유교의 성리학과 불교, 기독교 비교~

 성리학에서, 이기 일원론은 육신과 정신 즉, "이기"가 "하나"이라고 주장하고, 이기 이원론은 육신과 정신은 별개로, "다르다"고 말합니다. [유교 “중용”은,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삶의 지혜 또는 생활철학을 말한다. 반면에, 불교 “중관(중도)”은, “비유비무”(있는 것도 아닌, 없는 것도 아닌), “비상비비상”(상이 아닌, 상이 아닌것도 아닌)과 같은, 이 세상의 본질적 존재형식을 말하는 것이므로, 그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② 불교에서는, 색과 공 즉, 육신과 영혼은 "같음"도 아니요, "다름도 아니다"라 합니다(비유비무). 즉, 중도사상으로 이것을 "공"이라 말합니다. 물질도 "공"이요, 영혼도 "공"인데, 그 "공"의 존재 형식은 "비유비무"의 존재이고, "비상, 비비상"의 존재라는 것입니다.(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 즉, 물질과 영혼의 겉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공"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같음"라는 것입니다

 

[공사상/ 즉, 불교는 영혼(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기 이원론입니다. 그런데, 육신인 물질의 원래 본질은,  비유비무의 존재이지만, 겉모습은 물질이므로, “눈”이라는 물질을 통하여, 육신은 눈으로 볼수 있으며, 그 영혼(귀신)도 육신과 같은, 비유비무의 형식으로 존재하지만, 육신인 물질을 통하여서는, 볼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영혼(귀신)은, 물질인 “눈”을 통하여는 볼 수 없고, “영안”으로 만 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편, 현대물리학에서도, 물질(육신)이 비유비무의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③ 물리학에서는, 물질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사실, "물질도 아니요, 공도 아님"을 말합니다. 즉, 본질적인 면에서,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라 말하는, 색즉시공의 개념과 일치합니다. 영혼은 물질인가? 아닌가? 물질도 아닌것이 존재하므로, 공도 아니다.. 석가의 업과 번뇌를 가지는 마음의 본체에 대한 설명~이것을 색즉시공, 공즉시색~, 즉,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석가말씀)~저승세계와 귀신을 볼 수 없는 이유 -색즉시공, 비유비무

 

(현대물리학) 불확정성의 원리~ⓐ현실적 거시세계 = 위치o+질량o = 물질 측정이 가능. ⓑ물질의 본질인, 미시세계는 = 위치o+질량x 또는 위치x+질량o= 측정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물질이라 말할 수도 없다(위치를 측정하면, 그 질량을 알 수 없고, 질량을 측정하면,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불확정성의 원리 공식에 의하면, “위치x운동량”이라 되어 있지만, 운동량은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측정이다. 운동량= 질량x속도. 그런데, 보통 말하는 물질 개념은, 움직이던, 움직이지 않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그 위치+질량이 특정되고, 위치와 질량이 있는 것을, "물질"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불확정성 원리 공식의 운동량 중에서, 속도를 빼면, 질량만 남는다. 즉, 물질은 “위치+질량”이다. 이것이 동시에 측정되어야 “물질”이라 부른다.

 

즉, 미시세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하이젠베르크말씀). 석가 와 하이젠베르크 의 말씀이 동일함. 이것으로 노벨물리학상~. 즉, 현대 물리학에서는, 관찰이 되면, 존재하는 것이고, 관찰이 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불교의 공사상과 유사함 / 그러므로, 현대물리학에서도, 물질(육신)이 본질적인 면에서, 비유비무의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 색즉시공 = 비유비무 = 공 = 제행무상 = 양자역학 → 모든 존재는, 영속적 실체가 없으며, [① (불교) 인과,연기~ ② (양자역학) 관찰자~]와의, “상호작용”하는 “관계만 있을 뿐이다(양자역학에 의한, 현대 물리학의 "불확정성" 논리)

 

* “눈”이라는 "물질"을 통하여, “비유비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영혼”(귀신)이나, “물질의 본질”을 볼 수는 없다. 영혼의 눈, 즉, “영안”이나, “열반"을 통하여, 저승세계, 귀신들 세계, 화엄세계를 볼 수 있다. 즉, “눈”이라는 “물질”이 아닌,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저승세계이며, 귀신들 세계이다. 나아가, “영혼”의 눈에서,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진여”의 눈으로 보는 세계가, 일심법계이며, “화엄세계”이다. 그러므로, 온갖 번뇌의 물결이 깨끗이 사라지고, (반야심경의 “조견오온 개공도” → “오온”이 “공”하다는, “비유비무”의 세계를 비추어 볼 수 있는)진실된, “해인삼매”의 눈, “참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가, 일심법계이고, 화엄세계이며, 부처의 세계이다.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은 같다며, "생사일여"라 말합니다. 삶과 죽음(귀신)은, 본질면에서는 (비유비무의 형태로 존재하는)“공”으로 같은데, 존재의 모습만 바뀐, 윤회의 한 형태라 하는 뜻입니다(존재하는 육신이, “허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허상”이라 말하는 이유는, 지금 있는 육신과 중생의 마음, 죽음 뒤의 영혼 조차도, 존재는 하지만, 항상 변화하는 "인과"에 의해 존재한다는 뜻으로, “진여”에 대비하여, “허상”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번뇌없는, 어떤 경우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본래적 마음을 “진여”라 말하며, 이것을 "불성" 즉, “여래심”이고 “부처님 마음”이라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여래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마음에 묻은 번뇌를 갈고 닦으면, 모두가 변하지 않는, 그래서 윤회도 없는, 부처가 된다는 것이 석가 말씀입니다)

 

[인과”에 의해, “항상 변화하는 존재”를변화하지 않는 “진여”에 대비하여 “허상이라 말하며, ②“인과”에 의해,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에 대비하여, 일체 모든 것이, 비유비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모습을, “”이라 지칭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 결코, “”가 아닙니다].

 

성경을 믿는 천주교와 개신교는, 영혼(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기일원론에 해당한다. 육체와 영혼을 동일시 하므로,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과 동시에 육신과 영혼은 함께 소멸되고, 사후세계가 없다(귀신은, 천사의 변신인 마귀라 주장한다).

 

사후세계가 없으므로 “천국과 지옥”도 당연히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죽은 사람이 살아 난다는 육신부활을 의미한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한 데, 이런 “불가능한 육신부활의 구원”을 “천국”이라 말하고 있을 뿐이다.

 

러므로, 성경에서 죽음뒤, 육신의 부활을 주장한다. 세상의 종말에, 실현 불가능한, 육신이 부활되어 죽은자가 살아나서, 좀비로 사는 것을 천국이라 말하며, 육신이 부활될 때, 그때, 심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기일원론에 해당하며, 세상이 종말되어, 실현 불가능한, 육신이 부활될 때까지는 천국도 지옥도, 심판도 없고, 사후세계도 없는 종교이다. 이집트의 미이라가 실현 불가능한, 육신의 부활을 믿고, 삐쩍 말라 비틀어진 미이라 모습처럼, 육신의 부활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기"에 해당하는 논리입니다. 

 

저승세계~ 사람이 죽은 후, 영혼(귀신)이 가게 된다는 사후세계를 말한다.

(유교)인간은 현실세계에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면 되므로, 저승세계에 대해 모르며 알 필요없다. 유교는 사서삼경으로, 인간의 삶의 도리를 말하고 사후세계는 모른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죽으면 육신은 없어져도 그 혼은 4대정도까지 유지되고, 4대정도가 지나면, 그 혼의 기가 흩어지고 없어진다고 생각하여[인간에게는 (정신/기)과 (육신)이 있는데, 육신은 죽어도 그 혼은 자손의 4대까지 존재하며 영향을 주고 서서히 소멸하므로], 후손의 도리로서 4대조상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이 유교의 예법입니다.

 

(한민족 사후세계)~ 사람이 죽으면, "송판"이나 "종이"에 북두칠성 모양 구멍을 뚫거나, 북두칠성 형상을 그려, 죽은 자의 육신을 받혀 놓는, "칠성판"이라는 한민족 특유의 “장례풍습”은 유교에서 유래된 풍습이 아니고, "한민족 만의 독특한 사후세계관"이다. 즉, 모든 죽은 자는, “칠성궁”(북두칠성)에 계시는 하나님(치성광여래, 북극성)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돌아가신 분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고 표현합니다. 이때 "하늘나라"(천국)은, “칠성궁”을 의미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손으로, 출생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였고, 죽어서도 “칠성궁”의 "하늘나라"(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하여, "한민족”(하나님민족)이라 명칭하였다.

 

(불교)죽음 뒤의, 영혼(귀신)을 인정하므로, 저승세계가 있다. 그래서 사후심판을 한다는 염라대왕 등이 있고, 저승사자가 존재한다. 영혼(귀신)은 업에 따라 극락세계, 지옥세계가 있고, 욕계, 색계, 무색계 라는 육도윤회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저승세계와 귀신(영혼) 이야기는, 유교의 것이 아니라, 모두 불교적인 것이다(“반야심경 원문과 해석” 블로그 “저승세계 도표” 참조).

 

(카톨릭,개신교) 구약에는, “신”에게는 제사를 지냈지만, 인간죽음 뒤의, 영혼(귀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귀신은 천사의 변심인 마귀라 말한다. 사람은, 육신과 함께 영혼도 소멸되므로, 저승세계가 없고, 저승세계가 없으므로, 제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과 함께 영혼이 소멸되므로, 당연히 천국과 지옥도 없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죽은 사람이 살아 난다는 육신부활을 의미한다그런데,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죽어서도, 또는 죽음 뒤의 육신부활도 불가능하므로, 천국, 지옥은 모두 거짓이다.

 

이집트의 미이라가 실현 불가능한, 육신의 부활을 믿고, 삐쩍 말라 비틀어진 미이라 모습처럼, 실현 불가능한, 육신의 부활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기"에 해당하는 논리입니다. 성경에서 영혼(귀신)을 부정하고 있음에도, 카톨릭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전세계 카톨릭 중, 오직 한국에서만 전도를 위해, 성경을 위반하며, 비공식적으로 허용된 행위일 뿐이다.

 

* 천국의 성~ 예수가 재림하게 되는,세상의 종말에, 거룩한 예루살렘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루살렘의 성에는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12대문이 있다" (요한계시록21: 2) → (이스라엘 지파별 1만2천명x12지파= 14만4천명이 살수 있는 크기로, “하늘”에서 온다는, 예루살렘의 성을 말한다. 일명 “천국의 성”) →즉, 천국의 성은, 세상의 종말에, “예수”를 믿었던 자들이, “하늘”에서 내려 온다는, 예루살렘의 성(천국의 성)에서,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기적으로, “육신부활”되어, 살게 되는, “성채”를 말하고, 그 곳에서 “육신부활”되어, 사는 것을 “천국”이라 말한다(“성채”에, 유대민족 12지파가 아닌 사람은, 들어 갈 수 없다. 그런데, 하늘에서 “성채”가 내려 올 수 있을 까? 계시록의 “요한” ~로마의 왕 "도밀티아누스"에 의해, 펄펄 끊는 기름솥에 던져져, 인간 튀김이 되어 죽음).

 

카톨릭은,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 지옥"이라는, "육신부활"은 실현 불가능하므로, "조로아스터교"를 본받아, 1439년, 죽은 자가 일시적으로 간다는 "연옥설"을 도입하였다(카톨릭에서 1439년 도입한, "육신부활"이 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머물게 된다는 "연옥"은, 성경에 없는 내용이므로, 개신교는, 카톨릭의 "연옥"을, "이단교리"라 말한다).

 

[종합] ①기독교~육신과 함께 영혼도 소멸하므로, 사후세계 부정(제사부정). ​그러므로 저승세계가 없고, 육신부활하면, 천국과 지옥 심판을 한다는 육신부활조건 천국신앙. 즉, “죽은 자의 시체가 벌떡일어 난다는 육신부활”이 되면, 중동신화 복제품, "예수"의 천국 심판이 있을 것 이라는, 육신부활 조건부 천국신앙. → 그러므로, 육신 부활에 대비하여, 유럽에서는 성당의 지하에, 신부들의 유골을 보존하였다. 일반인은, 중동신화 복제품, "예수" 심판까지, 육신 보존을 위하여, 잘썩지 않고 화려하며, 페인트칠이 있는 목관의 매장문화.

②유교~ 자연과 융화되며, 자연의 기운을 받아 자손이 잘되기 위해, 페인트칠 없어 잘썩는 목관과, 나이론없는 순수 무명옷, 육신이 잘썩기 위한, 습기없는 명당자리에 하는 매장문화(4대까지 제사). ③ 한민족~칠성궁(북두칠성)의 하나님 나라(천국)에서 살게 되므로, 매장 또는 화장(정한수 기도) ④ 불교~ 영혼은 저승에 가게 되므로, 이승에 대한 영혼의 미련을 떨치기 위해 화장문화(영혼을 인정하므로, 제사를 부정하지 않음). → (불교 세계관 ⓐ욕계~욕망으로 가득찬 이승과 저승세계. 욕망을 가지고 있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색계~욕망은 버렸지만,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무색계~”색”을 버리고, ”비유비무”를 체험하기 시작하는 “신”과 “천인”들 세계).

도교~노장사상을 계승발전시킨것으로, 노장사상(노자와 장자 사상), 역학의 음양오행, 의술, 점성술, 불교사상, 유교사상을 짬뽕하여 만든것으로, "도"를 닦는 심신수련으로 불로장생 탐구와 기복을 통한 이익을 탐구한다. 이것을 종교화 한 것이 도교입니다.

 

(노자~마음을 비우고 바람처럼 물처럼 유연하게, 무리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무위자연을 말하며, 혼란한 세상에서 안전하고, 무난히 처세하는 방법론을 말함.이런 노자사상은 장자에게 계승되었다. 

 

장자~어떤 목적을 추구하거나, 사유하지 않는 “도”가 천지만물의 근원이고, 이런 천지만물의 근원인 “도”는 저절로 발생하고 스스로 발전시키므로, 모든 “도”는 자연스러운 상태, 그대로를 말한다고 하였다. 즉, 무위자연이란, 영적인 “음”과 물적인 “양”이 조화를 이룬 상태로서, 이를 자연스럽고, 균형있게 발전되도록 추구하는 것을 "도"라 하였다)

 

옥황상제~ 도교 최고 신의 명칭이다. 도교가 종교화의 길을 걷다가, 도교의 용어인 “상제”와 유교의 용어인 “옥황”이 결합된 민중 친화적 용어의 결과물이다. 옥황상제는 우주삼라만상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창조신으로서 불가사의한 존재를 의미한다. 도교는 무위자연을 말하므로, 자연의 이치가 옥황상제이며, 옥황상제가 바로 자연의 이치라 말한다. 즉, “옥황상제”는 중국 도교에서 말하는 최고신의 명칭인데, 한국에서는 일부 무속인과 증산교에서도 섬기는, 최고신의 명칭이기도 하다.

 

* 카톨릭과 개신교 같은 점~

① 두 종교 모두 "천동설"을 말하는 야훼를 창조주라 믿고 있다. ② 신화를 표절하여 만든, 가상의 예수의, 육신부활과 승천을 믿고 있다. ③ 창조주 야훼와 예수는 동일인이라는, 성경에도 없고, 예수도 부정하는 “삼위일체설”을 믿고 있다. ④ 천국은, 종말에 예수가, 하늘에서 천국의성을 가지고 내려오고, 이 천국의 성에서, 죽은자가 “육신부활”하여 사는 것을 천국 또는 천국의 구원이라 말한다.

 

* 카톨릭과 개신교 다른점~

① 카톨릭은 사제가 신의 대리인이므로, 신을 대신하여 인간의 죄를 면죄해 줄수 있다고 한다 (성당에서 하는 전대사, 한대사, 고해성사). 개신교는 이것은 이단행위라 말함 ② 카톨릭은 죽은자의 육신부활이 불가능하므로, 성경에 없는 연옥설을 도입하여, 죽은자는 육신부활하기 전까지, 연옥에서 대기한다고 한다. 개신교는, 성경에서 죽은 자의 영혼은 흙으로 돌아갈 뿐이므로, 연옥 따위는 성경에 없는, 이단 교리라 주장한다. ③ 카톨릭은, 1950년부터, 예수의 엄마인 "마리아'의 승천을 확정하고 마리아를 숭배한다. 이에 대해, 개신교는 마리아의 승천은 성경에 없는 것이므로, 여신을 숭배하는 이단교리라 한다.

 

* 이승과 저승세계 ~ ⓐ욕계~욕망으로 가득찬 이승과 저승세계. 그리고 욕망을 가지고 있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색계~욕망은 버렸지만,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무색계~”색”을 버리고, ”비유비무”를 체험하기 시작하는 “신”과 “천인”들 세계(“반야심경 원문과 해석” 블로그에서의 “저승도표 참조”)

 

저승세계에서의 영적 발달 ~ 저승세계인, 영혼의 세계는 “비유비무”의 파동으로 존재한다. 이승에서 성취한 영적 발달 정도에 따라 파동이 달라지며, 비슷한 파동을 지닌 영혼들은 서로 모이게 된다. 영계에는, "비유비무"의 비슷한 파동 진동수를 가진, 영혼들의 공동체가 수도 없이 존재하며, 이들은 "같은 파동"의 집단을 이뤄 존재한다. 영적 발달 단계에 따라, 어두운 색의 집단부터, 찬란한 광채를 내는 집단까지, 여러 수준의 차원이 있다. 저승세계에서, 어두운 수준의 영혼이 마음을 열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면, 밝은 수준을 가진 영혼들의 도움을 받아, 원래의 밝고 순수한 영혼으로 회복되고, 진동수가 높아 지면서, 점차 진화하고, 다른 상위 영역으로 진입하며 발달해 간다.

신내림과 빙의(신내림과 귀신이 붙은 빙의는 구분되어야 함)

신내림 ~천상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도중이던 천인이, "자신의 능력으로 인간에게 여러 도움을 주겠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인간으로부터 받들음을 받겠다"등의 생각을 가지는 순간, 인연이 있는 자에게 신내림을 요구하여 무당의 신이 됨(신가물). 신내림을 받지 않으려면, 불법에 귀의하거나, 평소 마음을 정갈히하고, 수도정진하며 기도와 주문, 염불, 불경독송 등을 열심히 하여야 함.

* 무속현상~ 불교에서는 무속현상을, “정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무속인은, “병명”없이, 자신의 몸이 아프고, 가족들이 여러 가지 고통을 받는 현실에서, 어쩔 수없이 신내림을 받아 무속인이 된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특히 교회나 성당을 열심히 다녔음에도, 신을 받아 무속인이 된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심 마저 버려야” 이루어 지는, “무색계”의 깨달음을 모르는,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의 “천인들” 중에서, 일부가 자신을 능력을 과시하고, 인간을 돕겠다는 의도로, “보살행”을 하겠다며, “신내림”을 받게 하여,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즉, 아직 자신을 버리지 못 한, “천인” 중 일부가, 사주에 “귀문”이 있거나,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 인연있는 자를 찾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받들음”을 받고, “보살행”을 하겠다는 생각으로,“신내림”을 강제하며 자신을 모시게 하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이런 무속의 신들은, 나름대로의 여러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시는 신의 이름도, ooo산신, oo장군신, oo보살신 등등 각양 각색입니다. 이런 현상이 있다면, 불교에서는 불법에 귀의​​하거나, 평소 마음을 정갈히 하고, 수도정진하며 기도와 주문, 염불, 불경독송 등을 열심히 하며, 불 보살님의 힘으로, 무속의 신을, 설득하는 길 뿐이다(무속의 신들은 나름의 자존감이 있으므로, 인간의 힘으로는 설득하기 힘들고, 섣불리 설득하려다 오히려 반발심을 일으키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빙의 ~무주고혼(의지할곳없이 떠도는 배고픈 영혼),스스로 목숨끊은 귀신(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여, 목숨을 끊게 되면, 그 속마음은 이승에 대한 원한이 깊어, 그런 것이므로, 이승에 원한이 있는 일종의 원한령이다), 원혼귀, 집착령(이승에 미련을 가진 영혼), 조상령(아무런 깨달음이나 능력도 없이 자손을 도우겠다는 일념으로 저승가기를 거부하고, 자손에 집착을 가지고 있는 영혼)등이 천도재 "천도" 또는 "퇴치" 대상이다.

이들중에서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와 살면서,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을 빙의라 말하는데, 이들은 방언을 하거나, 조상이라고 속이거나, 스스로를 신이라 말하는 등, 자신을 받들고 배고픔을 면하고 대접을 받기 위해, 온갖 거짓말로 사람을 희롱한다. 방치하면 조현병이 된다. 이들도 천도재의 대상이지만 강한 집착력을 보이므로, 대부분 원력있는 스님이나, 법사, 무속인에 의한 "퇴치의 대상"이다. 이미 빙의가 있는 사람은, 강한 저항이 있어, 주문,진언, 염불보다, 퇴치가 우선입니다. 이들을 퇴치한 후, 재 접근을 막기위하여 주문, 진언, 염불등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특히, 사주에, "귀문"이 있는 사람에게, 귀신이 "빛의 형상"으로 보이면, 신 또는 조상신을 의미하고, 이런 경우 신의 힘으로 통찰력과 직관력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귀신이 "그림자형"으로 보이면, 잡귀나 원한귀등인데, 이런 귀문이 있는 사람은 잡귀에 빙의되기 쉬우므로, 평소에 불경과 염불을 꾸준히 하여 귀신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사주의 귀문, 귀문관살 ~ 맨아래, ⑥번, 사주역학 참조)

구병시식 구명시식 (천도재의 일종)~원인을 알수 없는 이유로 아픈 사람, 즉 사람에게 빙의한 "무주고혼" 등의 "귀신"을, 천도하거나, 원한귀"등을, 퇴치하는 의식으로, 귀신에게 음식과 법문을 베풀어, 이승에서의 몸에 베어 있는 집착을 버리게 하여 저승으로 인도하는 의식이다. 이것은 귀신을 다루는 의식이므로, 원력이 있는 사람이 하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해 지거나 효험이 없다고 함. (원력이 있는 스님이나 시중의 법사, 무속인)

* 조상 영가 천도 ~ 천도재는 원력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조상 영가에 대한 천도재는, 영안이 있는, 원력이 센 스님이 주로 하게 됩니다. 보통, 사찰에 수소문하면, 영가 천도를 전문으로 하는, 스님이 계십니다. 많은 비용을 들여 천도재를 했음에도, 고집이 센 조상 영가나 구병시식에서, 한번의 천도로, 천도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도재를 하기 전에는, 무속인을 만나보면, “조상이 보인다. 천도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듣다가, 천도재를 지낸 후, 여러 군데를 돌아 보더라도, 그런 말을 듣지 않으면, 천도가 잘된 것입니다. 천도가 잘되지 않았더라도, 천도재를 지내는 자체가, 바로 자신의 공덕으로 돌아 오게 되므로, 자신의 공덕을 쌓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합니다.

무속인 ~신을 받아 일을 하는 무속인은, 부속적으로 신점을 보기도 하지만, ​이승에 떠도는 무주고혼, 집착령, 원한령등과, 이러한 집착령, 원한령 등에 빙의 된자를, 신의 힘으로 퇴치하거나, 저승으로의 천도하는 일이 주된 일입니다. 또한, 이러한 집착령, 원한령등은 스스로 저승에 갈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므로, 자손에게 고통을 주어, 자손이 스스로 사찰 스님, 시중의 법사, 무속인을 찾아 상의하도록 하여, 자신을 천도해 줄때까지 계속 고통을 주며, 천도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천도의 일은, 중생을 도운다는 보살행의 일종이므로, 스스로를 보살님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卍 (만) ~절을 뜻하는 "卍 (만)"자는 전법의 수례바퀴인 법륜을 의미하며, 불교와 사찰을 상징하는 대표문양이다. "卍" (만)자는 그 끝이 좌측으로 꺽여, 시계방향으로, 즉 우측으로 돌게 되는 모습이다. 한편 히틀러 문양은 반대로 꺽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게 되는 모습으로 되어 있다. 무속에서 "卍 (만)" 를 사용하는것은 사찰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무속이 모시는 "신"이 부처님법에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임.

 

지구로부터 빛의 속도로 220만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 안드로메다은하(M31)는 220만광년 떨어져있는 눈으로보는 가장 가까운 은하인데, 우리은하와 1초에 140km씩 가까워져 25억년뒤에는 충돌이 예상된다함. 220만광년이라 함은, 빛이 우리눈에 들어오기까지 220만년이 걸리니, 지금보는 안드로메다은하의 모습은 220만년전의 모습이 됩니다

 

열반 ( 니르바나, 적멸 ) ~불성(법성)은 언제나 진리의 모습으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데, 중생의 "자아"는, "업과 번뇌"로 인하여, 한시도 변하지 않는 "자아"가 없다. 그러므로 중생에게는, 전생의 "자아"나, 내생의 "자아"도, 지금의 나와 똑같은 "자아"가 아니다(제법무아). 그런데, 비유비무(공)를 비추어 보는 경지에 이르러,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업과 번뇌의 불"이 꺼져, 중생처럼,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는, "생과 사"라는, 육도윤회의 고통이 없는, 변함이 없는 진리의 세계인, 적멸의 세계(법성)에 이른 것을 말한다.

 

극락세계 지옥세계 ~극락은 항상 즐거움만 있는 세계를 말하고, 지옥은 끊임없이 고통이 계속되는 세계를 말합니다. 이런 극락과 지옥은, 지금 이승에 존재하기도 하고, 저승에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승에서는, 자신의 마음이 항상 즐거우면, 그것이 바로 극락이며, 항상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그것이 바로 현재, 지옥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승에서는, 육신은 없고, 마음만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기억을 하든, 기억을 하지 못하든, 선악도 구별하지도 않고, 자신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기록하고 저장한다는, 마음의 제일 깊은 곳인 제8식인 "아뢰아식"이라는 무의식이 있습니다.

 

이 무의식의 존재인 "아뢰아식"이 마음의 본체인데, 이 마음의 본체가 보여주는 세계가 항상 즐거우면, 극락이고, 항상 괴로우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만 존재하는 저승세계에 있어서의 극락과 지옥도, 자신의 업에 따른, 마음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필름이라 생각하면, 그 마음이라는 필름이 선업으로 얼룩져 있어, 자신에게 항상 즐거움을 보여 준다면, 그곳이 바로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그 마음이라는 필름이 나쁜 업과 괴로움으로 얼룩져, 자신에게 항상 괴롭고 고통스런 세계가 펼쳐져 보인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세계인 것입니다. 자신이 극락을 생각하려 해도, 필름이 악업으로 얼룩져 있다면, 보여지는 세계는 지옥 뿐입니다. 그래서 극락왕생을 하려면, "나쁜 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지어라"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개념의 색즉시공 (물질세계인 이승과 영의 세계인 저승) ~이승은 물질의 세계이고, 저승은 영의 세계입니다.영의 세계인 저승에서, 자신의 마음에 묻은 업을 소멸하기 위해 물질세계인 이승으로 왔다는 겁니다. 자신의 물질적 세계의 옷을 벗어버리면, 영적인 마음만 남게 됩니다. 영적인 저승세계에 있는 모든것, 즉 지옥이나 극락은 자신의 마음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 마음이 물질세계인 이승으로 오게 되면, 물질인 육신을 통하여 그 물질을 만지고 촉감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저승세계의 모든것은 자신의 마음의 상태로 존재하므로,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이것이 깨달음입니다)그래서, 지옥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보살이 아무리 설법을 하고 노력을 해도, 스스로 업의 본질을 깨닫고(견성) 변하지 않으면, 구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물질적 세계에 길들여진 영혼이, 저승에 가더라도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업식이 항상 그렇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 이것이,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가르침을 준,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라는 말의 유래이다. (필름으로 비유하자면, 번뇌가 없는 여래심 은 깨끗한 원본 필름인데, 중생심 은 번뇌와 업으로 얼룩진 필름이므로, 자신의 눈에 항상 번뇌와 업으로 얼룩진 모습의 저승이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즉, 저승이든, 이승이든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진실이고, 그것이 자신의 업식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의해 좌우되어, 그것이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지옥이나, 극락은 오직 마음의 업식에 따라 그 존재여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그런데, 마음의 업식이 모두 없어진 상태가 바로, 성불이요, 우주의 본심이요, 우주의 법진리 "비로자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뇌가 소멸된 부처의 눈에는, 각 중생마다 달리 보일 수도 있는, 유기적 물질세계인  기세간, 윤회되는 (영계를 포함한)중생세간은, 전부 '업'과 '인과'의 총체적 모습이다.

 

즉, 중생의 중생심에는 지옥과 극락이 분명히 존재하지만(유위법), 부처님의 마음인 여래심 에는 지옥과 극락이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무위법). 그러므로 진리를 다른곳에서 찾지 말고(원리전도몽), 허상이든, 실상이든, 이승이든, 저승이든, 인연연기로 인하여, 자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그대로가 바로, (자신의 "업"으로 보이는)참진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입니다.

 

물리적 개념의 색즉시공 ~ "색즉시공"의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현대물리학의 거장인 하이델베르그 에 의하면, 물질이라 함은 질량과 그 질량이 존재하는 위치가 특정되야 물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물질을 쪼개고 쪼개어 원자상태 이하로 쪼개어 분석한다면, 질량이 측정되면 위치를 측정할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면 질량을 측정할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물질의 불확정성의 원리 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존재하는 물질도, 사실은 물질도 아니요, 공도 아님을 말합니다. 즉, 물질도 그 본질적인 면에서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라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개념과 일치합니다.

 

영혼은 물질인가? 아닌가? 물질도 아닌것이 존재하므로, 공도 아니다. 이것이, 석가의 업과 번뇌를 가지는, 마음의 본체에 대한 설명 입니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합니다. 즉,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석가말씀)~저승세계와 귀신을 볼 수 없는 이유. 물질의 본질인, 미시세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하이젠베르크말씀).

 

석가 와 하이젠베르크 의 말씀이 동일함. 이것으로, “하이젠베르크”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즉, 현대 물리학에서는, 관찰이 되면, 존재하는 것이고, 관찰이 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불교의 공사상과 유사함 / 그러므로, 현대물리학에서도, 물질(육신)이 본질적인 면에서, 비유비무의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하이젠베르크"(1901~1976)는, 양자역학의 개척자이며, 양자역학에서 소립자연구는 원자폭탄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미시적 우주론 ~ 물질의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지고,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 중간자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원자핵의 양성자 개수를 “원자번호”라 하며, 이런, “양성자 개수”는, 원자의 “원소종류”를 결정한다. 중성자 수는 양성자와 같거나, 다를 수 있는데, 같은 원소라 해도, “중성자 개수”에 따라, 물질의 “동위원소”를 결정한다. 동위원소가 다르면, 같은 원소라 해도, 질량과 그 성질이 달라진다. 중성자수가 양성자수보다 많아, 양성자와 결합을 못해, 불안정한 중성자를 “자유 중성자”라 하며, 자유 중성자를 이용하여, 핵 연쇄반응을 조절한다고 한다.

 

① 양성자와 중성자에서, 양성자는 “2개의 업쿼크”와 “1개의 다운쿼크” 등의 양(+)의 전하를 띤 “강입자”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중성자는 “아원자 강입자”라 부르며, “1개의 업쿼크와 “2개의 다운쿼크” 등의 “강입자”로 구성되며, 전하를 띠지 않아 중성자라 한다. ②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는, “쿼크”는 모두 6종류이다. 이들 “쿼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로, 이론상 존재하지만 측정하기 어려워, “업쿼크”, “다운쿼크”, “참쿼크”, “스트레인지쿼크”, “바텀쿼크” 등 5종은 실험을 통해, 결국 발견됐으며, 마지막, top쿼크는 1995년도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들 6종류는 서로 대칭구조를 이루며 존재한다고 한다. ③ 또 "중간자"는, 수많은 “글루온”과 4가지의 다른 “중쿼크”(반입자, 반-퀘크)가, 서로 물끊듯이 순환하며, 2개의 업쿼크와 1개의 다운쿼크 등 6개 쿼크를 이어주고 있다고 한다.

 

④ 렙톤(렙톤은, “전자”를 포함하고 있어, 통칭 “전자”라 말한다)~ 원자핵 바깥에 있는, 가벼운 입자를 말한다. 양성자, 중성자등 무거운 입자를, “바리온”(중입자)라 하는데, 그 바깥에 있는 가벼운 입자를, “렙톤”(경입자)이라 말한다. 렙톤은 6개가 있는데, 음(-)전하를 띠고 있는, “전자,” “뮤온”, “타우온”의 3가지가 있고, 각각 이에 대응하며 전하를 띠지 않은, 3개의 “뉴트리오” (중성미자)가 있다. “렙톤” 에서, 음(-)전하를 띤 “전자”는, “전자 기력”으로, 수많은 원자들을 결집시키는 한편, 가볍기 때문에 이동도 자유롭다.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실제 전선에서, 전자가 움직이는 방향과 전류의 흐름은 반대이다. "퀴크"등 "소립자"의 운동은, 에너지와 운동량(속도)으로 구성된다고 한다(불확정성의 원리).

 

* 원자 = ① 원자핵(양성자+중성자+중간자) + ② 렙톤(통상 전자) ⟹ 원자의 세부적 구성 : 아래 ① ②.

① 원자핵 → ⓐ “양”(+) 전하를 띤 강입자(양성자) + ⓑ 전하를 띄지 않은 강입자(중성자) + ⓒ 이를 이어주는 반입자(중간자) ⟹ ⓐ양성자와 ⓑ중성자는 6종류의 “쿼크”로 구성, ⓒ중간자는 양성자와 중간자를 이어주는, 수많은 “글루온”과 4종류의 “중쿼크”(반-쿼크)로 구성. ⟹ 즉, 원자핵ⓐ + ⓑ + ⓒ로 구성. ["퀴크"등 "소립자"의 운동은, 에너지와 운동량(속도)으로 구성된다고 한다(불확정성의 원리)].

 

*원자핵 소립자의 6종류 “쿼크” → “업쿼크”, “다운쿼크”, “참쿼크”, “스트레인지쿼크”, “바텀쿼크”, “톱쿼크” (소립자들의 운동은 "불확정성 원리")

원소종류(양성자 개수), 동위원소(중성자 개수), 자유중성자(양성자와 결합을 못한, 잉여 중성자핵 연쇄반응을 조절하는 데 사용)

 

② 렙톤(통상 전자) → ⓐ “음”(-) 전하를 띤 경입자(전자) + 전하를 띄지 않은 중성미자(뉴트리오) + ⓑ “음”(-) 전하를 띤 경입자(뮤온) + 전하를 띄지 않은 중성미자(뉴트리오) + ⓒ “음”(-) 전하를 띤 경입자(타우온) + 전하를 띄지 않은 중성미자(뉴트리오) ⟹ “렙톤”은 “음”(-)전하를 띤 3개의 “경입자”와 전하를 띄지 않은 3개의 “중성미자”로 구성(렙톤을 통상, “전자”라 부름) ⟹즉, 렙톤ⓐ + ⓑ + ⓒ로 구성.

⟹ “음”(-) 전자기력으로, 원소를 결합시키고, 가벼운 “경입자”이므로, 이동이 자유로워, 수많은 전자기기에 활용

 

입자물리학 은 우주를 이루는 기본입자가 무엇인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핵물리학은, "쿼크"등 "소립자"가 어떻게 양성자와 중성자속에 들어가서 속박되게 되었고, 그러한 입자들이 모여서 무엇을 이루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를 근거로 빛이 우주를 어떻게 이동하는가 하는것에 대하여 입자설 과 파동설 이 있습니다.→ 창문을 모두 닫은, 자동차안에서 수신되는 핸드폰의 전파는, 과학자의 주장에 따른 입자설 또는 파동설의 방법으로, 어떻게 창문의 공간을 통과하여 핸드폰에 수신될까요? (우리의 눈으로 보면, 공기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조밀하게 구성된 유리창임에도, 원자이하의 미시적 세계에서는, 비유비무의 세계와 같은, 전파도 통과할 정도의 수많은 공간이 있다는 뜻일까?)

 

우주와 별 ~ 우주에는 약 수천억개 이상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마다 약 수천억개 이상의 별이 있다고 합니다. 지구가 속하는 은하의 수천억개의 별중의 하나가 태양이며 그 태양의 혹성이 바로 지구입니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센타우리 프록시 라는 별로, 빛의 속도로 4.24년(4.24광년)이 걸리곳에 있으며, 눈으로 보이는 센타우리 알파A와B 라는 별은 빛의 속도로 4.37년(4.37광년)이 걸리는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윤회는, 이러한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의 항하사 모래알만큼 많은 세계, 삼천 대천세계의 자연현상입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 삶들은, 갈애(욕망)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불행의 경)

 

* 우리 우주나이 138억년 (우주에는, “안드로메다 은하” 같은, 약 수천억개 이상의 “은하”가 존재하고, 각각의 “은하”에는, 약 수천억개 이상의 “별”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 은하”의 약 수천억개 이상의 별 중, 하나가 태양이고, 지구는 태양의 혹성일 뿐입니다. 태양은,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빛의 속도로 3만년정도 걸리는 3만광년 거리에 있다. “우리 은하”의 크기는 약10만광년이며,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로 부터, 약220만 광년의 거리에 있습니다. 접시형 은하는 비교적 신생 은하이고, 구형 은하는 비교적 오래된 은하라 합니다. 거리는, "1a형 초신성 밝기"를 기준으로, 그 "은하"에 존재하는 "변광성"별의 색상 변화에 근거하여 측정하게 됩니다. 현재, 우주 탐사선의 목표는, 태양계를 벗어나, 0.01광년의 거리에서, 다른 행성과 비교를 위해, 태양과 “생명체”가 있는, “지구행성”모습을 찰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 태양탄생 50억년전→지구탄생 45억년전

 

우리은하~ “우리 은하”의 모습은, 납작한 나선형 팔을 가진, 접시형 모습의 “나선 은하”이다. 우리가, “우리은하” 속에 있으면서, 지구에서 보는, “은하수”가, 바로, “우리은하”의 단면 모습이다. "우리은하"의 중심부에는 초 거대질량을 가진, 블랙홀 "궁수자리A"가 있다. “우리은하”의 단면(은하수)에 대하여, 수소원자 분포도를 측정하거나, 단면(은하수)에 보이는, 별들을 적외선으로 찍어, 그 색상 분포도를 통하여, “우리은하”의 모습을 파악하게 되었다(“우리은하”에서, 생명체 존재가능성이 가장 높은 별(항성)은, 1997년 발견된, 태양과 비슷하게, 7개의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 “물병자리”방향으로 40광년정도 떨어진, 적색 왜성, “트리피스-1” 항성이다). 

 

* 보이드~은하들은 거미줄처럼, 줄을 선, 불규칙"그물"형태로 존재하는데, 은하 그물 사이에 있는, 에너지가 상실되는 빈 공간을 "보이드"라 한다.

* 암흑에너지 ~ 빅벵이후,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주 팽창속도가 점점 느려 져야 하는데, 오히려 우주의 팽창 속도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므로, 우주의 팽창 속도를 가속시키는 “미지의 에너지”를 말한다. 즉, 우주 전체를 바깥으로 당기고 있는, "미지의 수수께끼 같은 에너지"를 “암흑에너지”라 부른다.

* 우주배경복사~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전자기파가 총체적으로 누적되어, 모든 방향에서 들려오는, 균일한 온도의 전파로 관찰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우리은하”의 관측대상 뒤쪽에서 들려오는, 약 160GH의 주파수를 가진 전자기파인데, 모든 방향에서 들려오는 외부적 신호이므로, 이를 “우주배경복사”라 부른다. 이것은 라디오등 모든 전파수신기에서 들려오는 "기본적인 전파 잡음"이다. 빅벵 당시에, 우주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팽창과 시간의 흐름으로 3,000K파장 온도로 낮아지면서, 물질로부터 빛이 분리되고, 현재의 2.7K 파장 온도로 우주전체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잡음 전파신호를 말한다. 이를 발견한 “펜지어스”와 “윌슨’은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즉, 우주 배경복사는, 빅벵 당시 뜨거웠던 복사열이, 시간의 흐름과 평창으로 3,000K로 낮아지고, 이때 중력으로 갖혀있었던 빛이, 물질과 분리되어, 우주에 펴지기 시작하였다(물리학자들은, 3,000k로 낮아진 시점을 빅벵후, 약38억년후로 판단한다. 빛이 물질과 분리된 그때부터, 인류의 우주관측이 가능한 시점이 되었다. 따라서 빅벵 시점의 관측은 불가능하다). 멀리 있을 수록, 온도가 낮을 수록, 파장이 길다. 빛 파장의 순서는, 빛(자외선 → 적외선) → 전파의 순서이므로, "전파"의 파장이 길다. 그러므로, 전파는 가장 오래된 우주파장이다.

 

현재 2.7K의 파장으로 우주 전체에 매우 균일한 온도의, "전파"로 관측되는 것을, "우주배경복사"라 말한다. 이것으로 우주 역사가 138억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각 은하에서 발산하는 전파 온도 파장을 이용하여, 적색 점으로 표시되는 “은하”는, 푸른색 점으로 표시되는 “은하”보다, 멀리 있다는 것을, 표시하는, 수천억개의, “우주 은하 지도”를 만들게 되었다. 배경복사 온도는, ①우주가 무한하다거나, ②유한하다거나, ③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다면, 앞으로는 그 결과 수치는 점차 달라 질 것이다.

 

* 태양계밖 “우리은하”에서, 지구와 비슷한 행성~

① 제임스피블스(미국), 미셀마요르(스위스), 디디에켈로(영국)등 3명은, 우주속 수많은 은하의 분포와 양상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이론적 도구를 만들어, 우주진화와 구조에 대한, 해명에 기여하였다. 또한, 태양계밖에 있는 태양과 비슷한, “페가수스51”별(“헬베티우스” 별)에 있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발견한 공로로, 201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② “헬베티우스”라는 별은, “페가수스” 별자리 방향으로, 빛의 속도로 50.45년이 걸리는 거리(50.45광년)에 있는, G형, “준거성”으로, 이 별이, (자체 빛을 내지않는)“행성”을, 거느리고 있음을 1995년 최초로 발견하였다. 이를 도화선으로,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수많은 외계행성 발견”에 기여 하게 되었음. 즉, 지구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 행성은 발견하기 어려운데, 항성(별)과 행성은 각각의 중력을 가지고 있고, 항성(별)이 큰 궤도를 돌때, 작은 궤도를 가진 행성과의 상호간 중력 작용인, “도플러효과(중력의 영향으로, 빛의 색이 변함)를 이용하여 행성의 존재를 파악하게 된다.

 

③ 1997년 발견한, ‘물병자리”방향으로 40광년 떨어진, “트리피스-1”항성을, “도플러 효과”와 “통과측정법”(행성이 항성을 돌 때, 빛의 밝기가 변하는 것)으로, 측정하여, 이 별이 태양과 비슷하게, 7개의 행성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7개의 “행성”중에서 4번째, 5번째 “행성”에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이 행성들은 자전을 하지 않아, “행성”의, “항성”쪽 방향으로는 극심한 고온, 반대쪽은 극심한 저온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다).

 

도플러효과 ~ 서로 상대방과 관측자 사이의 운동상태에 따라, 소리나 빛의 파장이 변하는 현상. 즉, 서로 접근하는 경우에는 빛이나 소리의 파장이 짧아져서, 빛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진동수가 높아져 큰소리가 나고, 서로 멀어지는 경우에는, 파장이 길어져서 빛이 적색으로 변하고 진동수가 낮아져서, 소리가 낮은 음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함.

 

즉, 빛을 스팩스럼분석하면, 빨,주,노,초,파,남,보의 7가지 색으로 나타나는 데, 이러한 빛의 색은 빛이 에너지를 얼마나 가졌냐에 따라 빛의 색이 바뀐다고 합니다. 이동에 대한, 매질이 없는 빛의 이동은 입자설 파동설 이 있는데, 파동설에 의하면 짧은 거리는 파장이 짧아지고, 에너지가 많으므로, 보라색의 빛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빛의 속도가, 거리에 대하여 일정하다는 전제로, 짧은 파동을 가지고 많이 움직이는 에너지를 가져야, 같은 거리를 이동하므로~/빛이 입자로 움직인다면, 거리에 따른 에너지 변동이 없을 것 아닐까?) 도플러효과를 이용하여, 소리나 전파의 진동수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빨리 접근하는냐에 따라 진동수가 다르게 측정되는 진동수의 변동차이를 이용하여, 과속차량 적발에 사용하는 것이 스피드건 임.

 

별의 수명 ~ 태양의 수명은 100억년 정도이며, 지금 태양의 나이는 50억년 정도라 합니다. 질량이 작은 백색왜성은 소멸후, 다시 중성자별로 거듭나고, 질량이 큰 백색왜성은 소멸하면서 블랙홀이 되고, 다시 빛을 모아서 별로 탄생. 거시적 우주론인 천문학에서는, 각각의 속도를 가진 상대방에 대하여, 서로 접근하는 경우에는, 빛의 파장이 짧아져서 보라색으로 변하고, 멀어지는 경우에는 빛의 파장이 길어져서 적색으로 변하는 도플러효과를 이용하여 우주나 별의 나이를 계산하고, 항성(별)과 행성이 중력을 가지고 각각의 큰궤도와 작은 궤도를 돌때, 상호간의 중력작용인 도플러효과를 이용하여,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 행성의 존재를 파악하게 됨.

 

상대성이론 ~

빛의 속도가 불변하고, 자연법칙이 똑같다는 가정하에서, 관측자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운동은 상대적이다. 즉, 모든 관찰자에게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특수 상대성이론

 

상대방에 대하여 서로 가속도 운동을 하는 경우에, 가속도를 가진 관찰자에게는 가속도에의한 영향은 중력과 동등하게 작용하므로, 상대적으로 자연 물리법칙이 변하지 않는다. 이는 적당한 가속 기준틀로서 중력장을 변화시킬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될수 있고, 이러한 중력장이 시간과 공간을 결정한다고 한다. 즉, 중력이라는 것은 질량이 존재하므로서 발생하고, 그 중력이 질량주위의 시간과 공간의 경로를 결정하여, 그곳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존재한다는 것으로, 중력이 강한 곳의 시간이 중력이 약한곳 보다 시간이 늦게 흐른다. 곧, 시간과 공간은 중력에 의해 변화된다는 일반 상대성이론

 

거시적 우주론 ~ 이러한 상대성 이론은 천문학, 천체물리학등 거시적 우주론에서 빛의 속도로 움직일수 있는 물체가 있다면, 뉴톤역학의 고전물리학도 적용될수 있으며, 블랙홀등 천문학상의 여러 사실 설명에도 이용되고 있으며, 또 상대성이론은 입자물리학, 핵물리학등 미시적 우주론에서도 양성자,중성자,전자등 상호간의 중력이 작용하는 양자역학 소립자물리학등 미시적 우주론에서의 주도적 연구원리로 적용되고 있음.

 

미시적 우주론인 양자역학에 있어서, E=mc²에의거, 줄어든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만큼의 에너지가 생성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원자폭탄 수소폭탄의 원리 이며, 헬룸수소로 가득차있는 태양은, 헬룸수소 핵융합 반응이 계속 일어나면서 질량이 줄어들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뜨거움으로 인하여 급격히 팽창하여 적색거성이 되며, 그후 점점 식고 축소되어 백색왜성 이 되면 수명을 다한다고 합니다(물질로 부터, 새로운 에너지 생성방법이 원자폭탄이다).

 

에너지보존법칙 ~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물리계의 에너지는, 그형태는 달라질 수는 있으나, 그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에너지는 증감없이 일정하기 때문에, 에너지불변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이 법칙에서, 에너지는 그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곳으로 전달될 수 있을 뿐이고, 에너지가 새로이 생성되거나, 사라질 수가 없다는 법칙이다. 이것은 고전 물리학에서의 역학적인 일과 그에 의해 일어나는 마찰열이 동등함을 말하는 것이다(고전물리학의 에너지불변의 법칙). 한편, 현대물리학에서는, 질량들은 그 질량에 빛속도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은, 동등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E=mc²이며, 이런 원리로,  질량에 연속적인 질량파괴가 일어나도록 조치하여, 물질로 부터, 광속의 제곱에 해당하는 새로운 에너지 생성방법이 원자폭탄이다.

 

* 고전 물리학의 에너지불변의 법칙을 전 우주로 확장하여, 전 우주의 에너지와 질량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므로전 우주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 우주가 열린 우주가 아니고, 닫힌 우주라는 가설에 의한 주장일 뿐입니다. 하나의 "가설"을 가지고,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은 틀렸다고 말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전 우주가 닫힌 우주라라는 것이 진리라면, 블랙홀에 의해, 사라지거나, 생성되는 새로운 에너지는, 에너지불변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지요? 하나의 "가설"을 가지고 진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물리학자가 연구하고 규명해야 하는 것이지, 종교문제는 아닌것입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창조과학이라며, 태초에 "특정 창조주"가 전 우주를 창조하였고, 그 창조물이 어떻게 변하여, 어떻게 존재하여도, 암흑물질과 에너지가 소멸되는 블랙홀의 존재를 간과하면서, 에너지불변의 법칙에 의하여, 그 모든 것은 특정 창조주의 창조물일 뿐이라는 주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태초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태초의 에너지"를 창조했는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가? 아무런 인과없이 "무"에서 "유"의 "태초"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그 창조주는, 또 누가 창조했는가? 그 창조주를 창조한, 창조주는 또 누가 창조했나요? (무한하게 반복해야 하는 창조 논리)

 

설사, 그 창조주의 창조논리가 맞다고 해도, 지동설은 이미, 증명된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 태초의 창조주가, "지구를 창조"한후, "태양과 별을 창조"한, 천동설로 우주를 창조했나요? 천동설을 말하는 얼간이 창조주가 무슨 재주로, "태초에너지"를 창조하나요? 이런 "가짜 창조주"을 증명한다며, (암흑물질과 에너지가 소멸되는 블랙홀의 존재를 간과하면서)고전 물리학의 "에너지 불변의 법칙"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론과 빅벵론은 별개입니다. 빅벵론은 "태초 우주형성 에너지"에 대하여, "빅벵"이라는 "에너지 대폭발"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는, 하나의 학설일 뿐입니다. 근거는 "우주팽창론"이라는 가설때문입니다. 이런 학설은 증거에 의하여 언제든지 변합니다. 그러므로, “빅벵설”에 “모순”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창조설”이 진리가 될 수는 없는데, “빅벵설에 모순이 있으니, 창조설이 진리다” 말하는 것은 속임수입니다). 과학도 증명하지 못한, “무”에서 “유”의 “태초에너지”를, “창조신”은 “무”에서 “유”를 증명했나요? 아니지요? (이 블로그 위쪽, "태초 우주창조~" 참조)

 

영의 세계에 있어서의 시간과 공간 ~ ① 일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질량이 존재하므로서 중력이 발생하고, 그 중력이 질량주위의 시간과 공간의 경로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미시적 세계인 “원자이하의 세계”에서도 중력이 존재하기에, “양자역학”이라 합니다. ② 영의 세계가, “비유비무”의, “미시적 세계라면, 그곳의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사는 "거시세계"인, “사바세계”의 시간과 공간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저승의 세계”나, 부처님 계시는 “적멸의 세계에 있어서의 그 시간과 공간은, 사바세계와 비교하기 힘든 시간과 공간일 것입니다.

 

아승지겁~ “아승지”는 헤아릴수 없는 정도로, 많다는 뜻. “”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무한한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승지겁”이라는 말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무한한, “겁”의 시간이, 헤아릴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의 시간을 말한다.

 

”의 시간~ “1겁”은 “잡아함경”에서 ① 가로, 세로, 높이 15Km정도의 성안에 “겨자씨”를, 가득채우고, 100년마다 1알씩 꺼내어, 그 성안의 “겨자씨가 전부없어지는” 정도의 시간을, 넘는 정도의 시간 ② 가로, 세로, 높이 15Km정도의 “큰 바위”를, 누군가 100년마다 한번씩 스쳐지나가며, 마모될때, 그 “바위가 모두 마멸되어 없어지는” 정도의 시간”을, 넘는 정도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겁”을, “1소겁”이라 하고, “소겁” 20개가 모인 것을, “1중겁”이라 합니다. “1중겁”이 4개가 모여, “1대겁”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1대급”은, “4중겁”이며, “80소겁”이 됩니다. “1대겁”은, 하나의 우주가, 생기고, 마모되며, 소멸되는, “성”, “주”, “괴”, “공”이라는, 성립되고(성), 머물고(주), 무너지고(괴), 비어지는(공), 과정인 4개 과정["성"(20소겁),"주"(20소겁),"괴"(20소겁),"공"(20소겁)]을 거치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의 별(또는 하나의 은하)이, 성립되고(성), 머무르며(주), 무너지고(괴), 비워지는(공) 과정에서, 소요되는, 상상조차 힘든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 불교의 “대겁” 개념입니다.

 

과거 칠불 ~ 우주시간을 3대겁으로 나눌때, 과거 대겁을 ① “장엄겁”, 현재 대겁을 ② “현겁”, 미래 대겁을  ③ “성수겁”이라 한다. 각 대겁은 성립되고(성), 머물고(주), 무너지고(괴), 비어지는(공)과정인, "성 주 괴 공"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①“과거겁”(장엄겁)에 나신 부처님은, "비바시불", "시기불","비사부불"의 세분이 있고, ②“현겁”에 나신 부처님은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음광불)", "석가모니불"의 네분이라 한다.

 

그러므로, 과거겁 그리고 현겁에 나타나신, 7분의 부처를 "과거 칠불"이라 말한다(연등불은 또다른 세계의 과거불이다). 현겁에는 네분이 이미 나타나셨고, 앞으로 현겁에 더 나타나실 부처님은 996분으로, 모두 1,000불의 부처님이 나타나실것이라 한다. 또한, ③ “미래겁”(성수겁)에 나타나실 부처님을 “미래불”이라 하는데, 56억7천만년후에 나타난다고 한다.

 

찰나~ “순간”을 말한다. 불경 “아비달마 대비바사론”에 따르면, “1찰나”는, 1/75초(약0.013초)를 말한다. “120찰나”를, “1달찰나”(약1.6초)라 하고, “60달찰나”를, “1납박”(약96초)라 한다. “30납박”을, “1모홀다”(약48분)라 하고, “30모홀다”가 “1주야”(24시간)가 된다. 인연과보에 의한, 생멸법”에는, “자아”는, ‘번뇌”로, “1찰나”마다 “생기고, 멸하면서,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그래서, 고정된 “상”이 없다고, “무아”라 하며, “현재”에 머물어라 말한다)

 

도봉산 오봉밑 석굴암

 

나는 어디에 있는가? ~ 생각과 느낌은, 나 자신의 객체인 대상일 뿐이지, 나자신의 본체는 아니다. 그 생각이 들거나, 말거나, 그 느낌을 느끼거나 말거나, 그 생각과 느낌을 감지하는, 그것이 나의 본체이다. 나의 본체는 언제나 변하지 않고, 선악도 구분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중생심의 유식사상). 나 자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내 본체의 대상인 생각과 느낌이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본체는 어디에 머물고 있나?(여래심의 공사상 중관론 )

 

참선 ~ 자신의 인생관 또는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찾는 것"을, "참선"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참선은,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법성을 꿰뚫어 보기 위한 실천 수행법이다. 즉, 자신의 본래 면목인 자신의 참모습을 보기위해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의 고요함에 들어감으로서,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종교적 실천수행법.→ 마음의 본래자리(진여, 본래면목)를 보기 위해 고요함에 들어간다.→ 마음을, 번뇌가 없는 기초마음인, 원래자리로 돌아가는 "리셋"을 한다.(텅빈 마음상태로, 마음을 비운다)

* 참선방법~ “템플스테이”, “단기 출가”와 함께,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실시하고 있고,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신청가능한 “시민선방”, “참선선원”이, 전국 여러 사찰에 많이 있다. “선방”에서는 절대 묵언을 해야 하며①좌정→ ②조신→ ③조식→ ④조심 순서로 하게 된다.

 

좌정~의복, 허리띠를 헐렁하게 하고, 쪼이는 양말등은 벗고, 너그러운 자세를 취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정한다. 장소에 따라, 대면법과 면벽법이 있다. ②조신~(자세)좌표에 서서, 약간 머리를 숙이며 합장을 한 다음, “결가부좌”(아래 참조)의 자세로 좌표에 앉는다. ③조식~체내의 공기를 모두 토해 낸 다음, 자연스럽게 공기를 들여 마시는 것을, 2~3차례 반복한다. ④조심~여러 방법이 있지만, 주로 “수식관”을 하는데, "수식관"은, 숨을 들이면서 “하나”, 내쉬면서 “둘”과 같이, 숨을 들이 쉬고, 내쉬면서(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호흡에 집중하며), "하나","둘"하며, 수를 세고, 다시 “하나”부터, “둘”까지, 수를 세는 행위를 50분정도 계속하고, 10분정도 휴식하는 방법이다. ⑤기타~ 선방에서는 절대 묵언 해야 하며, 졸리거나, 자세가 흐트려지면, “경책”을 자청한다.

 

*결가부좌~ⓐ왼쪽 넓적다리에, 오른쪽발를 얹은 다음, 왼쪽발을, 오른쪽 넓적다리에 얹는다. ⓑ손바닥을 위로 하면서, 왼쪽손을, 발위에 놓고, 오른쪽 손과 가볍게 쥔다. ⓒ어깨 힘을 빼고, 등을 꼿꼿이 세우면서 꽁무니뼈에 힘을 주며, 허리를 세운다. 아랫배를 자연스럽게 내밀며, 상반신을 꼿꼿이 한 채, 턱을 당긴다. ⓓ혀는 넓적하게 펴서 입천장에 붙이고, 입을 가볍게 붙인다. ⓔ눈은 반쯤 뜨고, 시선은 1미터 정도 앞에 두면서, 몸을 앞뒤,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중심을 안정시킨다.

 

[이론을 안다고 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제법무아, 제행무상의 도리인 무념무상에 의하든, 수식관에 의한 참선을 하든, 모든것을 믿지 못하는 화두, 공안을 하든, 깨침을 믿지 못하든, 자신에게 가장 알맞는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면 원하는대로 언제든지, 무관심의 평정심의 상태에 들어, 자신의 본심을 볼수있는 상태를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며, 이를 견성(보살의 1지)이라고도 말한다. 그후, 자신의 번뇌를 하나, 하나, 제거해나가는 절차를 거침으로서 해탈,성불이 된다고 함.]

 

무관심의 평정심의 상태 ~무관심의 평정심의 상태인 "견성"의 경지에 올라선 정도의 높은 수준이면, 자신을 포함한, 대립대는 많은 사람들의 논쟁중에서, 언제든지 슬쩍 순간적인 선정에 들어갈수 있고, 그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면, 그 평정심의 마음 즉, 자신의 본질적인 마음은, (어떤 논쟁에 대하여)​ 절대적 중립상태 (선악을 구분없이 포용하는, 본질적 마음인 아뢰아식을 보는 상태/견성)가 된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마음은, 하늘에 태양이 무심히 떠 있듯, 완전한 무관심의 평정심의 상태에 있음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모든 중생에게 새겨져 있는, 이 본래적 마음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어떤 업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이 마음에 새겨진 각자의 업을 해소하므로서, 또는 선업을 쌓으므로서, 자신의 미래 삶을 밝게 하고 그것이 자신의 미래의 삶의 모습이고 사주팔자이며, 이 팔자는 지금이라도 당장의 마음가짐으로 얼마든지 바꿀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견성을 이루기 위해, 스님들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대중이 현생에서 이루지 못하면, 현생의 공덕으로 내생에서라도 쉽게 견성을 이루기를 바라며, 여러방편으로 대중에게 "함께 깨달음을 이룬다"는 보살행을 행하면서, 많은 고생과 용맹정진을 하고 있다.)

 

* 견성성불의 과정 견성(마음의 본성을 깨달음 : 보살의 1지) → 수도(번뇌를 제거해 나감 : 보살의 2지~10지) → 해탈 성불(번뇌가 완전히 사라짐). 이승에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체로서의 생존이라는 번뇌가 없을 수가 없으므로, 완전한 깨침(해탈,성불)은, “무색계”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석가는, 전생에, 이미 완성된, “호명보살”로서, “도솔천”에서, 천인들을 교화, 설법하셨고, “자비심”으로, 중생교화를 위해, 오셨기에, 쉽게 깨침을 완성하고, 그 "완성된 경지"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생과 같은, “육신”을 가진 몸으로(화신), 오셨기에 당연히 “육신”의 제한을 받아, 태어남과 죽음의 고통도 느끼게 된 것입니다.) → 저승의 모습에 대하여는 맨 아래의 "사후세계 모습, 저승도표" 를 참조하세요.

 

* ​수행단계별 명칭수다원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 최종 단계인 "아라한"을 줄여서 "나한"이라함. 사찰의 "16나한전", "500나한전"(ⓐ욕계~욕망으로 가득찬 이승과 저승세계. 욕망을 가지고 있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색계~욕망은 버렸지만,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신”과 “천인”들의 세계. ⓒ무색계~”색”을 버리고, ”비유비무”를 체험하기 시작하는 “신”과 “천인”들 세계)

 

* 돈오돈수 돈오점수 ~견성의 과정은 돈오돈수 (단박에 깨달아, 견성에 이르고)이고, 해탈의 과정은 돈오점수 (단박에 견성에 이른후, 번뇌를 하나 하나 제거하여 해탈에 이름)입니다. 즉, 돈오돈수로 견성에 이르고, 돈오점수로 해탈에 이르게 됩니다(해탈은 최종적으로 무색계에서 완성)

 

 진여~ⓐ우주일체의 본성으로, 여여하게 존재하는 법성이며, 자신의 근본적 본성을 말함(비상비비상의 모습) → 본래적 성품(불성, 부처)/  저승세계(영,귀신,신)~ⓐ법성(비상비비상) + ⓑ번뇌로, 변화하는 인과에 의존("영안"으로 볼 수있는 존재/영계 수행번뇌제거) →사후세계=ⓐ+ⓑ / ③ 현생계 ~ⓐ법성(비상비비상) + ⓑ번뇌로, 변화하는 인과에 의존(영) + ⓒ오온(육신)으로 부터, 끊임없이 영향받고, 변화하는 존재 →현생계 = ⓐ+ⓑ+ⓒ (현생계 수행: ⓒ번, 오온으로 인한 영향 제거, 그리고 ⓑ번, 분별심 같은 번뇌제거 → ⓐ번, "진여"에 다가 감=최종 무색계에서 완성)

 

화두, 공안깨달음의 방법으로 간화선 화두 공안 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고승에게 부처가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고승이 주장자를 가르키며, "이 똥막대기 이다"라고 화두를 던졌을 때, 이 화두를 받은이가 "왜 부처를 물었는데, 똥막대기"라 말하는가를 생각하며, 시도 때도 없이 자나깨나 이에 대한 생각을 품고,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밥먹는 것도 잃어버릴 정도로 간구하다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견성/보살의 1지)에 들어가게 된다함.

 

화두(공안)~ 간화선을 할 때, 선대의 깨달음을 얻은 선지식에게 받은, 말이나 행동을 “화두”라 한다. (화두에 대하여, 절대로 답을 찾지 않고, “의구심”에만 계속 몰입한다) *화두(예)~ ①나는 누구인가? ②부모에게 태어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③ 부처는 무엇인가? 질문에, “이 똥막대기다” ④ 진리란 무엇인가? 질문에, 주장자를 내리치며, “이 뭣꼬?”⑤ 깨달음이 무엇인가? 질문에, “뜰안의 잣나무다” 등등

 

위빠사나 (지혜공부) ~오온이 무상함을 관찰하는 것. → 사념처관

사마타 ~ 아나빠나 사띠 → 아나빠나(들숨과 날숨/호흡), 사띠(새김, 알아차림). 즉, 호흡새김에 집중하는 것. → 수식관(현재에 머물기)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초기 경전 중의 수행경~

① 대념처경 ② 출입식념경 (들숨날숨 마음챙기기 경) ③ 염신경 (몸에서 마음챙기기 경) ④ 염처경 (중아함경중의 염처경)

 

사념처관~ 부처님 최후의 설법(열반경)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은 앞으로 공부하는 “수행방법”을 어떻게 하오리까" ~

그대들이 의지 할 수행법은, 주로 “사념처관”(①신념처관 ②수념처관 ③ 심념처관④법념처관)을 닦도록 하여라.

 

첫째로 신념처를 관하고(육신은 살과 뼈와 피와 고름 등, 여러 더러운 것들이 인연 따라 잠시 모인 것이니, “부정”하다고 관찰하고),

둘째는 수념처를 관하고(중생들이 “낙”이라고 여기고 집착하는, 재물 이나, 음행이나, 권속이나, 권세 등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필경 고통의 결과를 가져오는 근원으로 관찰하고),

셋째는 심념처를 관하고(인간의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고 항시 “변화하고 바뀌므로” 하여, “고정된 상이 없다”고 관찰하며),

넷째는 법념처를 관하여라(“법성”을 제외한, 일체 모든 것은, 번뇌로 이루어진, 허망하고 무상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고”, 고정된 실체가 없으니, “나”라고 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고정된” 실체가 없는 “나의 소유”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소유”임을 관찰하도록 하여라).

 

대념처경 수행법 ( 사념처 ) ~ ①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②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③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④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몸, 느낌, 마음, 법의 네가지 마음챙김의 곳인 "사념처"를 관찰하면서, 어떠한 욕망과 견해(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를 버리고, "마음챙기는 자가 되어머문다.

 

염처경 수행법 ~ ①들숨, 날숨을 관찰하며,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②몸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③몸이 어떤 행동을 하든, 그 거동하는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 ①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②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③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④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⑤몸이 있구나하고,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마음챙김의 방법" ~

마음 챙겨 숨을 길게 들이쉬고, 마음 챙겨 숨을 길게 내쉰다. ① 길게 들이 쉬면서 "길게 들이 쉰다"고 꿰뚤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뚤어 안다. ② 짧게 들이 쉬면서 "짧게 들이 쉰다"고 꿰뚤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꿰둟어 안다. ③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들이 쉬리라" 학습하며 익히고,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내 쉬리라" 학습하며 익힌다. ④ 몸과 행동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 쉬리라"학습하며 익히고, 몸과 행동을 편안히 하면서, "내 쉬리라"학습하며 익힌다.(오온으로, 수시 때때로 일어 나는 번뇌를 초월하기 위한 수단으로, 호흡법과 몸을 함께 이용함)

 

이와같은 방법으로, 걸어 가면서, "걷고 있다"고 꿰뚫어 알고, 서있으면서, "서있다"고 꿰뚫어 알고, 앉아 있으면서 "앉아 있다"고 꿰뚫어 알고, 누워 있으면서 "누워있다"고 꿰뚫어 안다. 몸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꿰뚤어 안다. 이와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몸에 일어나는 현상(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는 현상(법)을 관찰하고 머문다.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그러므로,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 갈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 볼 때도,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 의복, 발우를 지닐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 볼 때도, 대소변을 볼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도, 서 있으면서도, 앉아 있으면서도, 잠들면서도, 잠을 깨면서도, 말하면서도,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 이제 비구는 "지혜"와 더불어, "마음챙김"으로, 어떠한 욕망(세상에 대한 욕심)과 견해(싫어 하고, 미워하는 마음)에도 "의지하지 않고 마음챙김으로, 스스로 머문다". 세상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마음을 강화하고, 현재에 머무르는 불교수행법[지금 "여기" →자신이 존재하는 곳 →자신 →마음자리(마음이 번뇌없는 순간의 현재에 존재)]~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미래를 생각하면 두렵고 불안하여, 번뇌가 끊없이 몰려 올 때는, 자신의 생각을 "현재"에 머무르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① 몸을 편안히 하고, 눈을 감는다. 숨이 들어 오면, "하나", 숨이 나가면, "둘", 다른 생각이 들어 오더라도, 그냥 두고, 호흡에 집중하며, 계속 "하나,둘" 한다. 어떤 느낌이 들어 오더라도, 그냥 "하나,둘"한다. ②우울할 때, 우울한 생각이 들더라도, "하나,둘" 하며, 호흡에 집중한다. ③ 잠이 안오면, 그냥 "하나,둘" 하며, 호흡에 집중한다. ④ 평소에 잡생각이 많아도, "하나,둘"하며, 호흡에 집중하여, 생각을 현재에 머무르게 한다.

 

* 사후세계 도표, 저승도표, 삼계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의 모습

사후세계 도표 저승도표 ~ 욕계 천상 육도

 

 

사후세계 도표 저승도표~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에서의 해탈 과정~ 팔해탈

 

결론적으로,

모든 중생에게는, 청정본심인 불성(법성)이 있고, 그 불성(법성)에 업이 쌓인것이 중생심입니다. 이런 중생심으로 말미암아 윤회를 하는 것이고, 이런 중생심으로 인한 윤회의 고리를 끊어라는 것이 부처님 말씀의 핵심입니다. 즉, 청정본심(불성)은 연기로 인한 윤회가 없는 존재로서, 부처님은 윤회없는 적멸의 세계에 계시는 겁니다. 근데 청정본심에 번뇌가 묻은 중생심은 연기로 인하여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윤회는 연기의 핵심입니다.

 

오온은 육신을 말합니다. 그 오온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의 번뇌가 허망하고, 그 오온의 본질은 공(비유비무)하므로, 오온으로 인한 번뇌를 벗겨, 자신의 청정본심인 불성(법성)을 찾아라는 것이 반야심경입니다. 즉, 자신의 중생심으로 인해 윤회를 하는데, 그 중생심속에는 윤회하지 않는 청정본심이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방법론으로, 인연연기로 인해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를 보는 지혜(반야)로서, 청정본심(불성)에 붙어 있는 번뇌를 벗겨라는 것입니다.

 

지혜(반야)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비유비무"(공)의 모습인데, 인연 연기로 인해 존재하는 것으로(인연연기의 집합체, 번뇌의 집합체, 유위의 집합체), 모든 인연 연기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모습 (자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모습) 그대로가 바로 세상의 진리임을 아는 궁극적인 혜안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은 같다며, "생사일여"라 말합니다. 삶과 죽음은, 본질면에서는 (비유비무의 형태로 존재하는)“공”으로 같은데, 존재의 모습만 바뀐, 윤회의 한 형태라 하는 뜻입니다(존재하는 육신이, “허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허상”이라 말하는 이유는, 지금 있는 육신과 중생의 마음, 죽음 뒤의 영혼 조차도, 존재는 하지만, 항상 변화하는 "인과"에 의해 존재한다는 뜻으로, “진여”에 대비하여, “허상”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번뇌없는, 어떤 경우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본래적 마음을 “진여”라 말하며, 이것을 "불성" 즉, “여래심”이고 “부처님 마음”이라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여래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마음에 묻은 번뇌를 갈고 닦으면, 모두가 변하지 않는, 그래서 윤회도 없는, 부처가 된다는 것이 석가 말씀입니다)

 

[①인과”에 의해, “항상 변화하는 존재”를변화하지 않는 “진여”에 대비하여 “허상이라 말하며, ②“인과”에 의해,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에 대비하여, 일체 모든 것이, 비유비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모습을, “”이라 지칭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 결코, “”가 아닙니다].

 

* 중국 선종 5조 “홍인”의 제자 “신수”가 읆은 시에, “마음은 거울과 같아, 거울에 묻은 떼를 갈고 닦아라” 했는데, 이에 대해, 6조 “혜능”은, 여래의 본심인 “진여”는 “본래무일물”이라, 거울도 먼지도 없다고 하면서, “분별심”을 버리라고 하여, 6조의 지위를 얻었다고 합니다. (신수는 “진여”를 생략하고, 중생심을 거울에 비유하여, 중생심에 대하여 시를 읆었고, 혜능은, "진여"는 물질이 아니므로, 여래심에는, 물질인 거울과 먼지도,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고, 중생이 가질 수 있는 “분별심” 앞에, “중생”을 생략하면서, 즉, 여래심과 중생심을 혼합하여, 말씀하시고 있다)

 

즉, “신수”는, 중생의 입장에서, 깨달음을 위해서, 중생은, "마음"이라는 거울에 묻은 떼(번뇌)를 벗기면, “진여”에 다가 갈수 있다는 말씀이고, 6조 “혜능”은, 여래의 입장에서, 여래의 본심인 “진여”는 물질이 아니므로, 본시 떼가 없고, 먼지도 없으니,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생은) “분별심”이라는 번뇌를 버리면, “진여”에 가까워 진다는 말씀이다. → 그러므로, 오온에 의해 항상 변화하는 “인연’으로 존재하는 중생은, 평소에는 변화하는 오온의 영향을 받아, "생각 분별"을 하지만, 그것에 마냥 끌려가지 말고, 항상 깨어 있고, (오온의 영향을 벗어난)분별심 없는, 현재에 존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 → 이러한, 깨어 있는, (오온의 영향을 벗어난)분별심이 없는, 현재에 존재하는 방법이 “참선, 선정”으로, “무념무상”에 들어가는 것.

 

윤회~~

윤회의 고리는 번뇌~

이것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깨달음~

그 방법론이 연기론이고, 중론이고, 일승인데,

이 모든 것이 윤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부처님 말씀을 곡해하는 사이비가 될뿐입니다.

 

유식사상 (중생심, 마음의 근원/번뇌의 존재) ~인간은 "안,이,비,설,신,의"라는 6가지 감각기관(눈,귀,코,혀,몸,의식)이 있는데, 6번째의 "의식"을 흔히 마음이라 부름니다. 제6 "의식"을 다시 세분하여, 제7식을 "마나스식", 제8식을 "아뢰야식"이라 합니다. 현대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제6식을 "의식"의 세계 / 제7식과 제8식을 "무의식"의 세계라 분류할수 있습니다. 제8식 "아뢰야식"은 마음의 가장 근원적인 무의식의 종자라는 것입니다

 

화엄사상 (연기사상/세상의 본질적 모습) ~우주의 모든 사물과 존재는, 스스로 홀로 존재한다는 자성이 없고, 서로 인연이 있어 발생하고 소멸하며, 이러한 인연으로 인한 발생과 소멸은, 우주의 무한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서로 원인이 되기도하고, 하나로 융합되기도 한다는 우주관을 말함(대광광불화엄경)

 

화엄세계~ ① 기세간(유기적 물질세간), ② 중생세간(번뇌로, 윤회되는 세간), ③ 지정각세간(번뇌가 소멸되어, 윤회되지 않는, 지혜 세간)이라는, 3세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하여,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일심법계”, “화엄세계”라 한다. 번뇌가 소멸된 부처의 눈에는, 각 중생마다 달리 보일 수도 있는, 유기적 물질세계인 기세간, 윤회되는 (영계를 포함한)중생세간은, 전부 '업'과 '인과'의 총체적 모습이다.

반야심경 사상 (공사상, 중관사상, 중도사상/깨달음의 방법) ~모든 존재는 연기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그자체는 고유한 자성(인과없이,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으므로, "공"이라고 합니다(인과가 없다면, "허상"이라는 의미에서 "공"이라 말함). 즉, 세계의 모든 존재는 스스로 홀로 존재할수 있는 자성이 없으므로 "공"한 것이며, 이런 "공"은 결코 "무"가 아니며,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비유비무"형태이다. 다만 자성이 없어 조건적으로 생기하여 현상세계에 존재하게 된 것이라는 겁니다. 즉, "공"이란 "비유비무"이며, 중도이고, 모든 존재가 서로 조건적,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스스로 홀로 존재할수 있는 자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①인과”에 의해, “항상 변화하는 존재”를변화하지 않는 “진여”에 대비하여 “허상이라 말하며, ②“인과”에 의해,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에 대비하여, 일체 모든 것이, 비유비무”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모습을, “”이라 지칭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 결코, “”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공"을 "유"나 "무"의 극단이 없는 중도라는 것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것이, 깨달음에 다가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반야경).

 

법화사상 (일승사상/ 부처님의 진실한 뜻, 자비심과 보살행)~ 부처가 이세상에 출현한 큰 뜻은, 누구라도 큰 뜻을 실천하면, (일승으로 귀결되어)차별없이 부처가 될수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법화경은 석가의 45년 설법 내용을 마무리하는 경전으로, 석가의 출현은 차별없는 일승으로의 귀결을, 스스로 알리고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라는 내용의 경전이다. 그래서 법화경(묘법연화경)은 모든 경전의 집대성이며, 완성된 경전이라 말한다.

 

석가여래는, 열반에 들기 얼마 전, 영산회상에서 열린 법회에서, 자신이, 45년동안, 설법한 “아함부”의 가르침이, 사실 “방편”이었다고 말하면서, 석가여래는, 무한한 시간 이전에, 이미 성불한, 부처임을 밝힌다. 그리고, 성불하기 위해서는 성문승, 연각승(벽지불)은 방편이고, “삼승”중에서, 오직, “보살승”으로만, 성불이 가능하다고 밝혔다(일승). 즉, “사성제”와 “12연기”의 수행만으로, 열반에 이르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석가여래는 본격적으로, 보살”의 존재를 말하면서, 일승으로의, 대승 설법을 시작한다.

법화경 “여래 수량품”에서, 석가는 수억겁 이전에 이미 성불을 이루었는데, 중생을 위한, “화신" 보살로서, 이 땅에 오셨다고 밝혔다. 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부처의 “대자대비심”을 말해 주는 것이다. 보살로 오셨다는 뜻은, 보살이, 사실상 “법진리”로 이끌 수 할 수 있는 확실한 존재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모든 보살은, 중생들이 부처의 지견을 깨달아, “일승”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중생들에게 방편으로 열반의 경지를 보여 주며, 이 세간에 출현한다고 선언했다.

법화경에서, 부처를 이루는 마지막 단계가 보살행이므로,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등, 모든 여래는 끝없는 보살행을 하여, 부처를 이루었고, 그런 보살이 진정한 “일승불” 임을 알린다. 법화경에서, 자신이 45년동안, 설법한 “아함부”의 가르침이, 사실 “방편”이었다고 밝히면서, “일승불”로, 반드시 들어와야 이룰 수 있다는, 법화경의 가르침 말씀은, 곧 “소승”에서 멈추지 말고, “대승”의, 진짜 “법진리”로 들어오라는 뜻이다(소승의 “무아”에서 멈추지 말고, “자아”기반의 “비유비무”를 비추어 보며, 보살행을 행하는, “대승’이 진짜 “법진리”로 가는길 임을 밝혔다).

즉, 모든 보살은,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중생들이 있는 그 사바세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대비심의 보살행의 실천). 아미타불, 약사불은, 먼 과거세에 “대원”을 세우고,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므로서, 부처가 되었다. 그러므로, 원을 세운 불자라면, “대승법”의 "보살행"을 실천하라는 내용이 “법화경”이다(이런 석가불의 “법화경 설법”을, “영안”으로만 볼 수 있는, “비유비무” 세계에서, 증명하고, 보증하신 부처가, “다보”부처이다. 불국사는 이런 "비유비무"세계에서 이루어진 "다보불"의 증명을 형상화하여,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웠다).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은 같다며, "​생사일여"라 말합니다. 삶과 죽음은, 본질면에서는 (비유비무의 형태로 존재하는)“공”으로 같은데, 존재의 모습만 바뀐, 윤회의 한 형태라 하는 뜻입니다(존재하는 육신이, “허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허상”이라 말하는 이유는, 지금 있는 육신과 중생의 마음, 죽음 뒤의 영혼 조차도, 존재는 하지만, 항상 변화하는 "인과"에 의해 존재한다는 뜻으로, “진여”에 대비하여, “허상”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번뇌없는, 어떤 경우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본래적 마음을 “진여”라 말하며, 이것을 "불성" 즉, “여래심”이고 “부처님 마음”이라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여래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마음에 묻은 번뇌를 갈고 닦으면, 모두가 변하지 않는, 그래서 윤회도 없는, 부처가 된다는 것이 석가 말씀입니다)

* “깨달음”이란? ~ 삶에는 “인연과보의 법칙”이 따르는, “생멸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본래문”인, “비유비무”(중도)로 존재하는, “진여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몸소 비추어 보는 것(조견)을 "깨달음"이라 말한다. 부처님은, 세계 최초로 “진여문”을 깨우치고, “오온”을 비추어 보신 후, "이제 어둠의 세계는 타파되었다. 내 이제 여래의 세계를 선포하노라.며,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곧 “중도”(비유비무 / 방법은, 존재의 본질인, 비유비무를 비추어보기 위한, 8정도)이며, 중도의 내용이 “연기”이며, 이 “중도”(비유비무)와 “인연 연기”(사성제)를 깨치면,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체적 깨달음의 방법론 ~ 나는 어디에 있는가? ~ 생각과 느낌은, 나 자신의 객체인 대상일 뿐이지, 나자신의 본체는 아니다. 그 생각이 들거나, 말거나, 그 느낌을 느끼거나 말거나, 그 생각과 느낌을 감지하는, 그것이 나의 본체이다. 나의 본체는 언제나 변하지 않고, 선악도 구분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중생심의 유식론 ). 나 자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내 본체의 대상인 생각과 느낌이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본체는 어디에 머물고 있나?( 여래심의 중관론 )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 (圓覺度量何處 現今生死卽時) ~ 사찰의 주기둥에 많이 쓰여 있는 글귀로, 그 뜻은 “깨달음의 경지인 청정본심(원각)도량은 어디에 있는가? 현재의 생사가 존재하는 세상의 바로 이곳 “여기”이고, 때는 바로 지금 “즉시”이다[지금 "여기" →자신이 존재하는 곳 →자신 →마음자리(마음이 번뇌없는 순간의 현재에 존재)]

 

천수경의 첫 발원 문구~

무상심심미묘법~ (불법은 더 이상 위가 없는 “무상정득정각”의 경지이므로), 불법은 매우 깊고 깊은 “미묘한 법”임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백천만겁난조우~ (이렇게 매우 깊고 깊은 불법은), 수천 수만의 윤회를 거듭하여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것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아금문견득수지~ (그처럼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이제야 인연이 되어), 금생의 내가 드디어 불법을 듣고, 보고, 받아 지니게 되었습니다.

원해여래진실의~ (이번 인연을 놓치지 않고), 제가 반드시, 부처님 말씀의 진실한 뜻을, 알수 있도록부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을 올림니다.

 

* 사홍서원 ~ 불자가 가져야 하는, 네 가지의 큰 서원

​① 중생무변서원도~ 중생이 끝이 없어도 다 제도하겠습니다.

② 번뇌무진서원단~ 번뇌가 다함이 없어도 다 끊겠습니다.

③ 법문무량서원학~ 법문이 한량이 없어도 다 배우겠습니다.

④ 불도무상서원성~ 불도가 위없이 높아도 다 이루겠습니다.

 

이 블로그의 글이, 너무 길어 부담스러우면, 아래 블로그 리스트 중, (②번 요약 발췌분) "반야심경, 유식사상과 공사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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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불 교사찰과 불교기도문, 부처와 보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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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반야심경 원문과 해석유식사상과 공사상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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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②번 요약 발췌분) 반야심경, 유식사상과 공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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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하느님 예수는 누구인가가짜 하나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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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③번 요약 발췌분) 하나님 하느님 예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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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사후세계 도표, 저승도표,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의 모습 ~ 위 ②번 후반부에, 통합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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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묘장구대다라니경 : 천수경 기도문, 불교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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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주와 사주팔자 풍수지리역학과 운명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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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⑥번 요약 발췌분) 사주팔자와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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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 핸드폰 카톡 카카오톡 사진과 문서를 컴퓨터 usb에 저장, 옮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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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⑦번 요약 발췌분) 카톡사진 컴퓨터, usb에 저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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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라 말하는 성경의 진실과 문제점, 성경책 구약과 신약 ~ 동일 내용으로,   번에 통합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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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 공룡능선 등산 오세암 망경대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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